<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창림사지 삼층석탑

톰소여와허크 2014. 12. 19. 10:55

 

 

창림사지 삼층석탑* / 이동훈

 

 

어떤 주문을 외어야

몸돌의 쌍바라지를 열 수 있을까.

저 문 안에 들면

높아도 높바람 없고 누워도 윗바람 없는

고루고루 뜨스운 세계가

내밀하게 마련되어 있으리.

아직 계약하지 못한 날의 밥을 위해

―열려라 밥!

주문을 걸어볼까.

바닥이 쉬 보이는 뚜껑밥 말고

나누어 더 푸짐한 두레밥을 빌어볼까.

기단에 내려서서 문을 지키는

아수라의 갈퀴눈이 물러지거나

건달바의 종주먹이 느슨해지면

천 년 비밀을 열어젖힐 듯

사방의 문고리가 달싹거리지.

공교롭게도 노루 한 마리

소나무 그루터기로 뱝뛰어 내려와

잠시 한눈팔기라도 하면

문고리는 다시 요지부동이야.

저녁놀에 불그름히 물든 창림사지에

밥때 잊고 오래 서 있으면

사람의 마을로 어서 내려가라고

둥근 턱으로 미는

석탑 한 기 있어.

 

 

*창림사지 삼층석탑: 경북 경주 배동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