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박새에게 세 들다 / 복효근

톰소여와허크 2015. 1. 1. 12:15

박새에게 세 들다 / 복효근

 

감나무 뒤 가까운 담벼락 돌 틈 사이

박새 부부 둥지를 틀었나 보다

3월도 중순 넘어

그런가 보다 하기로 했다

안방에 둥지를 트는 것도 아니어서

새소리 몇 가락으로 세를 받기도 하고

새끼 깔 그동안만 전세 내주지

담벼락 앞 감나무 사이 나무 하나 더 심으려

무심코 정말 무심코 오늘

구덩이 하나 파려는데

갑자기 박새 부부 내 앞을 달겨든다

네 집이기도 하지만 내 집이기도 하다

점유권을 주장한다

아차차 그동안 몇 조각 새소리 미리 받아 들었던 게 죄로구나

엉겁결에 구덩이를 포기하고

나무 심기를 포기하고

이 봄을 저 박새 부부에게 맡기기로 하는데

저 부부 정말 전세 등기라도 한 모양 당당해서

아무 말 못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집 나무란 나무 제 식탁으로

대숲 그늘은 제 주방으로

저 하늘 구름은 제 신혼 이불로

내 안마당도 제 운동장으로

모두 모두 소문내고 등기해놓은 것은 아닐까

어라 그래 그으래

이 어처구니없는 침탈로

내 것이라고 부를 게 아무것도 없는 빼앗겨서 즐거운

금낭화 촉 돋는 한때

 

- 『따뜻한 외면』, 실천문학, 2013.

 

 

  * 박새는 구멍과 틈을 좋아해서 나무든 전봇대든 담벼락이든 어디든 틈만 있으면 보금자리를 튼다. 그 보금자리에 알 낳기를 하는데, 알을 품고 있을 때는 인기척이 있어도 자리를 뜨지 않을 만큼 모성애도 유난하다.

  법적으로 등기를 한 주인이 다가왔을 때 박새 부부가 달려든 것은 뱃속에 든 아기를 위해 이만한 곳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어렵게 장만한 집을 한 번의 위협으로 포기하기 싫었을 수도 있다.

  주인인 시인은 잠시 놀랐지만 이내 수긍한다. 이미 새소리를 즐겨들었으니 공으로 세든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점점 주인 행세 하며 뻔뻔해지는 박새 부부를 상대로 소유권을 주장할 마음도 없는 듯하다. 시인은 의식적으로 “내 것이라고 부를 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삶의 윤리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에게 해코지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박새가 아니라 다른 누구와 시비가 붙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작고 힘없는 것들을 품는 마음,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주는 마음들이 모일 때 공동체의 삶이 아름다워지는 건 불문가지다.

  아직, 박새 소리가 어떤지 알지 못한다. 만약 박새의 말을 듣게 된다면, 집 고를 때 평수와 자재는 따지지 않더라도 주위 인심은 생각해 보라고 전하고 싶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