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호 / 김사인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cindy620/150095291590
비둘기호 / 김사인
여섯 살이어야 하는 나는 불안해 식은땀이 흘렀지.
도꾸리는 덥고 목은 따갑고
이가 움직이는지 어깻죽지가 가려웠다.
검표원들이 오고 아버지는 우겼네.
그들이 화를 내자 아버지는 사정했네.
땟국 섞인 땀을 흘리며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나는 오줌이 찔끔 나왔네.
커다란 여섯살짜리를 사람들은 웃었네.
대전역 출찰구 옆에 벌세워졌네.
해는 저물어가고
기찻길 쪽에서 매운바람은 오고
억울한 일을 당한 얼굴로
아버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눈을 보냈네.
섧고 비참해 현기증이 다 났네.
아버지가 사무실로 불려간 뒤
아버지가 맞는 상상을 하며
찬 시멘트 벽에 기대어 나는 울었네
발은 시리고 번화한 도회지 불빛이 더 차가웠네.
핼쑥해진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어두운 역사를 빠져나갔네.
밤길 오십리를 더 가야 했지.
아버지는 젊은 서른여덟 막내아들 나는 홑 아홉 살
인생이 그런 것인 줄 그때는 몰랐네.
설 쇠고 올라오던 경부선 상행.
- 『어린 당나귀 곁에서』, (주)창비, 2015.
* 시를 읽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비슷한 뭔가가 자꾸 그려지고 흐려지는 일들이 되풀이되었다. 유년의 경험이나 책에서 보았을 몇몇 장면들이 다녀가는 것이다. 그나마 불충분한 대로 이미지를 훑게 된 것은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이다. 동명의 영화에서 제목을 따온 것인데 아들을 위해 자전거 도둑이 되었다가 주인에게 들키는 영화 속 아버지, 거래처를 잃지 않기 위해 아들의 뺨을 때려야 했던 소설 속 아버지의 모습이 좀처럼 잊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소설 속 영악한 아이는 아버지가 속으로 흘리는 눈물을 간파하지만 아버지 같은 건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시인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참으로 쓸쓸하다. 아이 몫의 차비를 줄이려다가 검표원에게 호되게 당하는 무력한 아버지 상이다. 가난하더라도 가장의 품위를 잃지 않았을 아버지가, 제복을 입은 사람에게(수직적 위계가 중시되는 억압적인 국가일수록 경찰이 아니더라도 제복에 약한 심리가 있는 듯하다) 야단맞고 빌고 사정하는 것을 고스란히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이전의 존경심은 흔들릴 것이고 스스로도 어쩔 도리 없는 부끄러움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구하고, “인생이 그런 것”이라며 세상 읽는 눈을 키우며 어른이 되어가겠지만 그 쓸쓸한 잔상은 오래오래 남아있을 터이다.
목욕탕에 가거나 버스 탈 때 키가 작은 막내의 요금을 계산할까 말까 고민할 때가 있다. 나이대로 값을 치러야 한다 생각하지만, 혹여 셈을 속이더라도 좀 봐주기를 바란다. 아버지 얼굴을 생각해서. 가게 주인이든 검표원이든 아버지든 아들이든 이 시를 읽은 사람은 다들 조금씩 너그러워질 것이라 믿는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