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창가에서 / 남대희
楊明義(Yang Ming-Yi) 작
겨울 창가에서 / 남대희
흰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시집*을 읽다가
어느 추운 겨울날 밤
연못에 발 담그고 잠들었던 철새들이
아침, 꽁꽁 얼어붙은 연못을 매달고
하늘로 날아간 은빛 푸른 연못
그 연못이 쏟아져
하얀 눈꽃으로 다시 내리는 것을 봅니다
나뭇가지마다
송사리 떼 소복소복 매달려
반짝반짝 비늘을 세우고
거리로 나온 연인들 머리 위엔
새하얀 연꽃으로 피어나고
뛰노는 아이들 등 위에는
힘찬 잉어로 퍼덕입니다
세상이 온통 은빛 연못이 됩니다
시인이 날려 보낸
은빛 연못은
한 잎 한 잎 눈꽃으로 다시 피고
다시 시(詩)가 되어
또 다른 시인의 가슴을 매달고
창공을 납니다.
* 임보, 『날아가는 은빛 연못』
- 『나무의 속도』, 우리시진흥회&움, 2015.
* 한 권의 시집을 읽고 그 시집으로 인하여 세상을 다르게 보거나 더 깊게 들여다보거나 세상에 대해 자신도 이야기할 게 생겼다면 그 시집의 무게감은 단순한 한 권이 아닌 게 된다. 남대희 시인은 『날아가는 은빛 연못』을 읽고 연못이 되거나 철새가 되거나 눈꽃이 되거나 하면서 그렇게 시의 곁에 머문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예의 시집 서문엔 “…그래서 잠자던 철새들의 발이 그만 연못에 다 얼어붙고 말았단다./ 그 가엾은 새들이 어떻게 되었겠니? 다 얼어죽고 말았을 거라고? /그런데 말이야 그렇질 않았어. 다음날 아침 사람들은 놀랍게도 하늘로 날아가는 연못을 보았지./ 새들이 발에 매달고 날아가는 은빛 푸른 연못을…” 이라고 되어있다. 시집 전체의 분위기를 아우르는 서문일 텐데, 이처럼 생명 있는 것을 돕는 인정이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마치 마술과도 같이 이루어지는 세계가 또 다른 시인의 영감을 자극한 것이다.
사랑이 사랑을 키우고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는 말이 적절한 것 이상으로 시가 시를 키우고 시가 시를 낳는다는 말도 그러한 줄 알겠다. 이제, 나무의 속도로 새로 차린 시인의 은빛 연못도 또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 고이 얹힐 것을 생각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