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처럼 서 있다
술병처럼 서 있다 / 진영대
주방 모퉁이, 싱크대 옆에
늘 있었던 것처럼 술병이 하나 서 있다.
평소 술을 못 마시던 어머니 제사상에
초헌하고 아헌, 종헌하고도
첨작까지 하고도 반 이상 남은 채로
술병이 하나 서 있다.
밀봉의 마개 한 번 열린 후로
술병은 쓰러질 수 없다.
굴러다닐 수 없다.
남은 대로 서서히 김이 빠지면
식구들은 슬쩍슬쩍 술에 취한다.
아내나 아버지나 그리고 나는
한 잔의 음복술도 마시지 못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술에 취한다.
술병이 비고 쓰러질 때까지
아내도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술병처럼 서 있다.
- 『술병처럼 서 있다』, 문학아카데미, 2002.
* 밥그릇은 밥을 덜어내도 중심을 놓치지 않고 언제든 밥을 기다리는 자세를 풀지 않는다. 술병은 밥그릇만큼 안정된 자세를 갖고 있지 못하다. 술병은 술을 덜어낼수록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만큼 조그마한 충격에 잘도 쓰러진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가 더 운동성을 갖기도 한다. 삶도 그럴지 모른다. 술병 좀 쓰러뜨려 본 사람은 대개 슬프거나 아니면 불안해서 일 것이다.
슬프면 슬픈 대로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마냥 견디려 하는 것도 삶의 한 방편일 것이다. “술병은 쓰러질 수 없다./ 굴러다닐 수 없다”는 전언은 슬픔과 불안 속에서도 나름의 쓸모와 책임을 다하려는 주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조금씩 김이 빠져야 오히려 더 편안해지는 유혹을 마지막 순간까지 견디다가 끝내 쓰러지고 뒹구는 게 삶이라면 너무 서운한 일인가.
어쩌면 세상이 거대한 술독과 같아 적당히 취해 사는 게 균형을 잡는 일일 수도 있겠다 싶다. 자 한 잔! 지금 이 순간, 술병처럼 서 있는 그대와 나를 위해.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