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 / 문인수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 / 문인수
나는 오늘도 내뺀다.
나는 오랫동안 이 동네, 대구의 동부시외버스정류장 부근에 산다.
나는 딱히 갈 곳이 없는데도, 시외버스정류장은 그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을 거라는 듯
수십년째 늘 그 자리에 있다. 그러니까,
이 동네에선 골목골목들까지 나를 너무 속속들이 잘 알아서
아무 데나 가보려고,
눈에 짚이는 대로 행선지를 골라 버스를 탄다.
어느날은 강릉까지 표를 샀다. 강릉 훨씬 못미처 묵호에서 내렸다. 울진을 가려다가 또 변덕을 부려
울산 방어진 가는 버스를 탄 적도 있다. 영천 영해 영덕 평해 청송 후포 죽변……
아무 데나 내렸다.
그러나 세상 그 어디에도 아무 데나 버려진 곳은 없어, 지금 오직 여기 사는 사람들……
말 없는 일별, 일별, 선의의 낯선 사람들 인상이 모두
나랑 무관해서 편하다.
한 노인이 면사무소 옆 부국철물점으로 들어가
한참을 지나도 영 나오지 않는다. 두 여자가 팔짱을 낀 채 힐끗 쳐다보며 지나갈 뿐,
나는 지금 텅 빈 비밀, 이곳에서 이곳이 아니다. 날 모르는 이런 시골,
바깥 공기가 참 좋다.
-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 (주)창비, 2015.
* 일상을 즐기며 살자는 선언에 무슨 불만이 있겠냐마는 너나없이 일상을 견디며 산다고 말한다. 일상이 싫어서 지금의 여기를 애써 떠나간대도 그곳 역시 새로운 일상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상을 일상으로 견디는 쪽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내뺀다”는 사람이 정작 부러운 것이다.
일상을 깨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일상에 더 충실하려는 사람까지도 잠시 일상을 떠나있는 게 좋을지 모른다.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아서 여행을 계획하고 새로운 앎을 기록하는 여행 고수들이 즐비하지만, “아무 데나” 가보고 “아무 데나” 내리면서 “아무 데나 버려진 곳은 없”다는 깨달음 일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내공도 상당한 게 아닌가 싶다.
일상을 견디는 다수의 우리는 누군가의 아버지며 아들이며 직장 동료며 선후배이기도 하다. 말단 직원이기도 하고 또 그런 소속을 꿈꾸기도 하고 반대로 버리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때그때의 역에 맞게 우린 너무도 일상적으로 애를 쓴다. 이런 일상 속 시인의 ‘내빼기’는 지금 이곳에서, 이곳이 아닌,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낯선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나’를 마음대로 놓아두며 돌연, ‘나’가 누군지 떠올리게 되는 경험도 참 각별하지 않을까 싶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