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맥 / 임보
숙맥 / 임보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참 숙맥이었다
부끄럼도 잘 타고
비위짱도 없었다
어느 한가위 명절에
내게 들어온 생어물 한 짝
내가 먹기는 과분해
스승의 댁에 넣어 드리고
문 밖에서 그냥 돌아왔다
누가 보냈을까
스승은 무척 궁금했으련만
내가 보냈다는 말을
차마 전하지 않았는데
굳이 드러낼 게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30대의 일이다
- 『광화문 비각 앞에서 사람 기다리기』, 시와시학, 2015.
* 《속미인곡》을 읽다 보면 마지막 구절이 인상 깊다. 임의 사랑을 잃고 차라리 죽어 ‘지는 달’이 되어서라도 임만을 쳐다보겠다는 여자에게, 달 되지 말고 ‘궂은 비’ 되라는 친구의 충고가 그럴듯해서다. 일방적인 사랑 대신에 자신의 슬픔과 사랑을 임이 알게 하라는 것 아닌가. 정철이 《사미인곡》에 한번 더 《속미인곡》을 쓰는 속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표현하지 않는 말이나 주장을 상대가 온전히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여기서 마음 쓰는 만큼 저기서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러기 위해서 마음 이상으로 표현하는 성의도 있어야 할 줄 안다.
물론, 그 표현이 지나친 사람도 있어 눈이 시기도 하지만, 시인처럼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낯설지 않다. (시인이 들으면 혼자 숙맥이 아니라서 안도할지 아니면 기껏 인정한 숙맥의 자리를 너나없이 넘본다고 섭섭해 할지 모르겠다). 속된 말로 인사 받으려고 마음 낸 일도 아닌데, 비밀 아닌 비밀을 만들고 그걸로 인해 속이 불편하기도 할 것인데, 그럼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니 이런 숙맥이 없다.(사실은 제법 있다). 사람 사이 정이란 것도 오고가면서 돈독해지는 것인 줄 번히 알면서도 끝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것은 “부끄럼도 잘 타고 / 비위짱도 없었” 던 성향이 한몫했을 테지만, 여기에 이해타산을 셈하거나 주위에 생색내는 일을 기피하는 선비 기질도 거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늦게나마 “차마 전하지” 못했던 말을 공공연하게 했으니, 시인을 숙맥 그룹에서 빼주어야 할지 고민이다. 아마 시인은 못 들은 척 자리를 넘겨주지 않겠지^^.
그러고 보니, 정철은 임금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너무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답답한 일이지만,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해 한평생이 걸리는 사람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쩜, 사람 자체가 이미 표현이기도 하지 않나.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