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 박후기
멸치 / 박후기
여자는 가끔
좌판 됫박 위에 솟은
피라미드 구조 위로
멸치를 집어 올린다
집어(集魚), 자꾸
집어 올려도
결국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건
한두 마리의
굽은 등짝뿐이다
나머지는 우르르,
생의 저변으로
끊임없이 무너져 내린다
집어도 집어도 남아도는
멸치들, 좌판 위에서
멸시를 견디고 있다
- 『격렬비열도』, ㈜실천문학, 2015.
* 아버지의 돈이 아들의 돈이 되고, 돈이 돈을 굴려서 돈부자가 되는 세상이 자본주의라면, 자본주의는 자본을 가진 사람이 다 가지자는 주의다. 자본주의가 진행될수록 부의 독점이 공고해지면서 피라미드 구조에 가까워지는 듯하다. 자본은 힘 좀 쓰는 사람이나 목소리 좀 내는 사람에게 부를 조금씩 떼어주면서 체제를 굴러가게 한다. 이 구조의 개선을 말하는 이도 적지 않지만, 반대로 피라미드가 가장 안정된 구조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이 구조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거드는 사람도 있는 줄 안다.
시인은 “생의 저변으로/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는 멸치를 통해서 피라미드 구조의 실상을 보여준다. 꼭대기를 이루는 “한두 마리의 굽은 등짝”(바르게 펴서는 승자가 될 수 없다는 함의로도 읽힌다)을 위해서 다수의 멸치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바닥을 뜨고자 하는 시도가 거듭되어도 꼭대기의 공기는 선택된 소수에게만 허용될 것이다. 애써 올라가도 주인의 손날에 날아가고 제풀에 떨어져나가 “멸시를 견디”는 멸치들의 운명은 서민들의 면면과 다르지 않다.
나는 꼭대기와 바닥의 구별이 없는 세상이기를 소원하면서도 피라미드 꼭대기가 사라지기야 하겠는가라는 의심도 갖고 있다. 그래서 공기가 위아래로 이동하는 것처럼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돈도 돌고 사람도 순환케 할 수는 없는지, 피라미드 구조의 순기능에 대해서도 살짝 고민해 보는 것인데, 이런 멸치 생각 같으니라고 하면서 누가 탓하지는 않는지 뒤가 켕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