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우는 법 / 박정곤

톰소여와허크 2015. 8. 1. 04:19

우는 법 / 박정곤

 

울 줄 모르는 사람들 한 곳으로만 치닫고

홀로 떠나며 울더라, 박용래.

 

- 『그래 자비란』, 양문각, 1996.

 

 

* 시인은 십여 년 전, 내게 술을 한 번 산 적이 있다. 그런 연고로 시인이 그 이전에 썼던 시를 발견하곤 반기는 마음이 된다. 시인이 사숙한 걸로 보이는, 두 명의 시인은 전상렬과 박용래다. 둘 다 앞시대의 대표 술꾼이다. 대구에서는 전상렬 시인의 제자 도광의가 술꾼의 계보를 잇고 있다. 눈물의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진 박용래의 눈물 콧물도 술기운을 빌려서다. 내 경험으로 볼 때도 술 먹는 사람은 술 안 먹는 사람을 잘 쳐주지 않는데 박정곤 시인도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한때 술 좀 한다는 함민복 시인이 “눈물은 왜 짠가”라며 되물었듯이 진짜 울음은 소금기를 찍어내며 마음의 중심에서 우는 것이다. 반대로 이성을 작동시키거나 남을 의식하는 순간 울음의 진정성은 줄어든다. 시인은 “울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현실이 불만이다. 박용래 시인도 맨정신에 울지 못하여 술을 그렇게 찾지 않았나 싶다. 시원하게 울지 못하는 시대에 살면서 수시로 잘 우는(어쩌면 대신 울어주기도 하는) 박용래는 참한 시인일 수밖에 없다. 시인의 헌사를 박용래가 저승에서라도 알게 된다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술을 한 잔 사겠다고 청했을 게 분명하다.

술이 술을 연하여 부르기도 하겠지만, 이젠 주량만큼 마시고 일어서는 경우를 더 많이 본다. “그대,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이여”(정현종, <낮술>에서)라고 노래했지만 요즘은 낮술 할 시간도 장소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절제도 나쁠 건 없지만, 박용래를 뒤적이다가 만난 또 한 편의 시가 술을 당기게 한다. 비운에 쓰러진 구자운 시인에 대한 헌작(獻酌)의 말이 사무친다. “오늘은 널 위해 슬픈 잔을 / 던지누나”(박용래, <반 잔>에서)라는.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