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일기 / 서윤규
청도 어린이 도서관에서
독서 일기 / 서윤규
그는 도서관 열람실 한 구석에 앉아
젊어서 죽은 시인의 유고 시집을 읽는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그의 젊음이
어지럼증을 일으키며 아뜩해진다.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의 마음이
문자와 몸을 바꾼다.
그는 문자와 한 몸이 된다.
그는 문장의 속도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보폭을 좁혀간다.
오를수록 가파른 문장의 끝에서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맥박이 뛴다.
맥을 짚으면 맥박과 맥박 사이
굵은 문맥이 잡힌다.
문맥을 따라 굴곡진 삶의 안쪽을 더듬는다.
뭉클, 막힌 문장처럼 손목을 긋던 날의
매듭이 짚인다.
그는 단단한 매듭의 상처를 조용히
어루만진다.
오랫동안 막혔던 문장이 풀리고
막막한 날들의 가슴에 숨통이 트인다.
오늘도 그는 도서관 열람실 한 구석에 앉아
천천히 책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두부는 비폭력 무저항주의자』, 문학의전당, 2015.
* 치료의 의미를 갖고 있는 힐링이 대세다. 약물치료나 물리치료 대신 기존의 심리치료에 놀이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원예치료, 독서치료 등이 분화되거나 섞이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렇듯 현대인에게 치료가 먹히는 명백한 이유는 아픈 사람이 많아서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우울증이나 강박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본인은 괜찮다고 해도 그 증상이 의심되는 사람도 있다. 다 갖추고 사는 듯한 사람이 불안을 호소하기도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정작 스스로는 무력감에 빠져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안 아픈 사람이 없으니 결국 힐링이다. 이런저런 치료 중에 어느 정도 효과도 자신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간단하고 편리한 치료는 독서치료, 그 중에서도 시(詩)치료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절실한 부분을 시의 행간에서 운 좋게 만나게 된다면, 같이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단단한 매듭의 상처” 한 올쯤은 풀어지는 기대를 가져도 좋지 않겠냐는 거다. 더욱이 누군가의 “굴곡진 삶의 안쪽을 더듬”어 “뭉클”할 수만 있다면, 치유와 함께 자신의 영혼도 얼마쯤 높아지고 맑아지는 것이리라.
혹자는 힐링(healing)을 히어링(hearing)으로 읽기도 하지만 잘 듣는 것 이상으로 잘 읽기(reading)도 중요하다. 그러니 reading이 수시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서관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장소에, 슈퍼 앞에, 마을 평상에, 시장 입구에, 고목 옆에, 또 어디든 간에 그 마을에서 설계하고 디자인한 시집 부스를 두면 어떨까 혼자 궁리해보는 것이다. 동네에 따라 소설 부스를 만들겠다는 주장이나, 시 소설 반반으로 하겠다는 의논이 마구 쏟아져도 좋겠다. 생각만 해도 힐링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