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마지막 청춘 / 박승출

톰소여와허크 2015. 8. 12. 23:12

 

 

마지막 청춘 / 박승출

 

 

내 알몸을 본 적 없다. 그것이 나의 비밀.

 

휴일에는 들판에 나가 밤하늘의 별을 다 세고 왔다. 어떤 작자는 나를 정신병적으로 읽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여서 개의치 않는다. 병원 회전문 앞에서 돌아 나왔다. 버스와 달리기 시합을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건 나뿐이었다. 어떤 귀갓길에는 아무렇게나 발에 밟힌 꽃들이 막 숨을 거두고 있었다. 꽃들의 이름은 잘 몰랐지만 나는 꽃들에게 애도를 보내주고 싶었다.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찾을 수 없었다. 웅덩이에 고인 흙탕물에 옷을 다 적셨다. 냄새나는 옷을 입고 출근했다고 공장장이 욕설이 퍼부었다. 창밖에는 계절이 바뀌려는지 낙엽이 지고 있었다. 널어놓은 빨래에서는 구정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직공 하나가 식은 커피를 따라주었다. 나는 언제쯤 내 몸에 맞는 옷을 찾을 수 있을까. 졸다가 기계에 손가락을 잘릴 뻔했다.

 

내 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 나의 병(病)

 

퇴근길에 집 앞 포장마차에 들르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가끔 헤어진 애인에게 몰래 전화를 했고, 아무도 없는 공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곤 했다. 다 읽지도 못할 책을 빌리러 뒤뚱뒤뚱, 도서관에 가는 버릇을 끝내 버리지 못했고, 함부로 도심을 질주하는 버릇도 죽음의 충동들도 불면의 밤도 여전했다.

 

- 『거짓 사제』, 문학의전당, 2015.

 

 

  * 청춘이 아프다. 돈 들 일은 많고 실제 빚을 내어 돈을 쓰기도 하지만 돈 갚을 일이 막막하다. 취업은 바늘구멍 지나기다. 기껏 통과한다 해도 시간제나 비정규직이 되어 내일을 또 걱정해야 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 해서 삼포라 그러더니 하나, 둘 항목이 늘어서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꿈’도 포기 목록에 있다. 시인은 “발에 밟힌 꽃들이 막 숨을 거두고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자신으로 인해 상처입은 영혼에 대한 위로이겠지만 동시에 지금의 청춘이 바로 그 꽃과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내 알몸을 본 적 없”는 청춘은 아직 자신의 정체를 다 알지 못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모르는 청춘이 자신의 가난을 욕보이는 세상을 견딘다. “구정물 뚝뚝” 떨어지는 모습은 청춘의 자존을 세워주지 않는다. 청춘은 “내 몸에 맞는 옷”을 찾고 싶다고 했다. 이성을 그리고, 자아를 실현할 있는 직장을 그리고, 자신이 살고 싶은 제도와 이념을 그리지만 이제 그런 고민조차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시인은 시집의 다른 시에서 “왜 삶이 청춘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리 늦게 알았을까”(<정류장에서 비를 맞다>중에서)라고 했다. 오는 비를 다 맞고,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가다 보면 지난 청춘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시인 대신 혼자 먹는 밥과 불면의 밤을 이어가는 청춘에게 악수를 건네겠다. 도서관 가는 버릇을 끝내 버리지 못한 청춘으로 해서 조금 웃기도 할 것이다. 유아에게든, 청춘에게든 노년에게든 책이 있어 꿈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별 영양가 없는 말을 보태면서.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