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소한 小寒 / 권선희

톰소여와허크 2015. 8. 15. 11:07

 

 

소한 小寒 / 권선희

 

 

깊은 밤, 동태찌개를 끓인다. 알배기 러시아산 동태가 바람 든 무와 콩나물을 부둥켜안은 냄비 속. 가스레인지 수위 한껏 높인다. 꽁꽁 얼어 동강난 몸으로도 죽기를 작정하면 끓을 수 있다 안을 수 있다 뒹굴 수 있다 소리치는 밤. 어머나, 이 신나는 연애 좀 봐. 두부를 넣는다. 풍덩 뛰어들어 들썩이는 호흡에 마음 실실 뜨거워 오는데, 캬아〜 창밖은 싸늘하게 문 닫은 바다, 쓴 소주 한 병 팔지 않는다.

 

- 『구룡포로 간다』,애지, 2007.

 

 

  * 말복(末伏) 지나는 날 소한(小寒)을 읽는다. 복(伏)은 사람이 무더위에 개처럼 엎드려 굴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혹자는 사람이 개를 먹는 날로 공인된 거 아니냐고 신을 내서 말한다. 글자 자체를 편견 없이 보면 개나 사람이나 동등하게 꿀림 없이 마주하라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연애도 그렇다. 제대로 된 사귐은 또 연애는 평등해야 하지 않을까. 한쪽이 기운다든지 하는 애먼 소리를 내는 것은 연애의 자격이 없다.

  대한이가 소한이 찾아가서 동태된다는 그날, 동태찌개가 맛나게 끓는다. 처음에는 삶이고 연애고 뭐고 간에 수가 틀어져서 “꽁꽁 얼어 동강난 몸”이지만 불기운을 얻고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의 “바람 든 무와 콩나물”을 받아들이면서 신나는 연애를 완성한다. 슬쩍 노출시킨 연애의 기술 하나는 “죽기를 작정하면”이지만, 이를 심각하게 읽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한쪽에 치우쳐 얼어붙은 마음에서 다른 마음으로 옮겨가는 마음이면 될 것이다. 창밖 세상이 아무리 험하다 해도 마음바닥의 밑불이 살고 연애 감정이 살아 있으니, “캬아〜” 소주 마시지 않아도 좋게 취한다.

  복날에 뭍의 짐승으로 보양하듯이 소한(小寒)엔 바다의 걸로, 이왕이면 동태찌개로 언 속을 풀자고 홍보하면 안 되나. 물론, 명태는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