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나비는 내 육신의 거처다 / 조두섭

톰소여와허크 2015. 9. 12. 20:15

 

나비는 내 육신의 거처다 / 조두섭

 

 

실핏줄 아래 차가운 초저녁별 떠오른다

서천으로 날아가던 새들이 멈칫하자

마음과 육신이 삐걱하듯

기차가 멈춘 노을, 너무 붉어 오히려 창백한

깜박깜박 되살아나는

옛날의 곤곤한 등불과 풍경소리

아직도 눈부신 것은 병이다

고요가 수만 번 명암으로 접었다 펴는 물소리

골짝 깊어 등불과 풍경소리 가파르다

그 높이와 깊이로 날아가는

나비가 내 유랑의 거처라면

기적소리는

하늘 바깥문을 잡아당기는 손아귀 힘

첩첩 산 넘어도 거처가 없는 것들

 

- 『망치로 고요를 펴다』, 만인사, 2004.

 

 

  * 이 시를 읽고 시로 쓴 시인의 자화상이란 인상을 받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시집 뒤편에 실린 시인의 산문에 “내 시는 한 쪽 날개에 고방산을, 또 다른 한 쪽 날개에 주마산을 지고 날아가는 나비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예천과 영주 사이에 자리 잡은 주마산(고방산은 주마산의 별칭임)은 시인의 고향이다. “고방산의 안온한 정착적인 이미지에 비하여 주마산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어디론가 달아나는 야성의 유목적인 이미지”며 이 둘의 길항 속에 자신의 시적 지향점이 있음을 시인이 밝혀 둔 것이다.

  시인이 거듭 노래하는 “등불과 풍경소리”는 고향 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였겠지만 그로부터 멀리 떠나온 지금은 그리운 것에 대한 호명으로도 읽힌다. 이 지점을 “유랑의 거처”로 삼고 날아가는 “나비”는 시인의 분신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먼 데 “기적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다시 산 넘어 “거처가 없는” 삶으로 자신의 발걸음을 옮기는 운명이기도 했을 것이다.

  음양의 조화 속에 운명이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고방산과 주마산 사이, 떠나는 봄이 있고 돌아오는 겨울이 있을 것이며 다시 떠나는 계절이 올 것이다. 정착과 방랑 사이, 안정과 불안정 사이, 현실과 예술 사이 시인은 부지런히 상생을 꾀하는 존재다. 고요에서도 명암을 발견하고 소리를 듣는 시간이 있어 이 계절은 더 깊어지겠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