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알네 / 권달웅
탄알네 / 권달웅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명 봉양리 내가 살던 마을 이름은 바뀌어도 그 마을에 살던 사람들 이름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네 동네까불네 정낭개굴네 똥물네 뿔때네 봉양꼬재이네 음나무꼭대기네 꽉새네 껄떡쇠네 콩살이영감네 지울뭉태기네 차조밥네 개호래이네 탄알네 한 집 한 집 찾아다니면 불러보아도 그을린 처마 밑에서 뻐드렁니 드러내고 웃던 사람들 보이지 않네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명 원둔리 마을 사람들은 많이 떠나고 없어도 탄알이네만은 아직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네 일제 암흑기에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문경새재에서 총 맞아 죽은 탄알네 사연은 정말 한이 많네 스무 살 청상과부가 되어 벙어리 아들 하나 보고 평생을 품팔이 하고 산 탄알네 평생을 남의 집 살이만 하다가 떠났네
- 『감처럼』, 모아드림, 2003.
* 봉화는 오지 중의 오지로 여겨지던 곳이다. 신규 여교사가 산간에 있는 하숙방을 얻고는 문고리 잡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곤 한다. 지금은 은어 축제니 송이 축제니 해서 사람들이 붐비기도 하고, 백두대간 협곡열차니 퇴계 산책로니 해서 이목을 모으기도 하지만 다른 농어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상주인구는 급감했으며 노령 인구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이 봉화 산골마을에서 유년을 보낸 시인은 도시화에 따른 이농 현상이 앗아간 마을 유산 하나를 시 한 편으로 건져 놓았다. 지역 주민의 특성이 잘도 드러난 호칭어(혹은 지칭어)가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백석의 시가 평북 고향마을의 풍속이나 음식문화를 잘 담아냈듯이 ‘탄알네’를 통해서 마을 공동체 안에서 서로 간에 어떻게 호명되고 소통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으니 퍽이나 요긴한 자료임이 분명하다.
탄알네로 부르는 사연에서 짐작했듯이 시인의 말로 부연하지 않으면 얼른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서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정낭개굴네는 똥간에 든 개구리처럼 시끄럽기도 했을 것인가. 콩살이영감네는 콩만 하신가, 아니면 콩설기나 콩부대기를 좋아하신 건가. 지울뭉태기네는 뺀질뺀질해서 뭉텅이(뭉텅이)를 지게에 지게 해야 마땅하다는 것일까. 나름 괜찮은 추리이긴 하지만 다 잘못 짚었을 것 같다.
시인은 한꺼번에 보따리를 풀 마음이 없나 보다. 어깨를 으쓱하고 있을 시인에게 술 한 주전자 받아주면 보따리 하나씩 풀게 될지 모른다. 그나저나 탄알네의 벙어리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장가라도 갔으면 좋을 텐데.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