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기 / 황규관
봉기 / 황규관
엎어서 위아래를 바꾸자는 게 아니다
엎어서 평평하게 하자는 것도 아니다
엎고,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떠나자는 것이다
함께 앓으며 별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폐허 위에서, 입맞춤의
울림을 가득 피게 하자는 것이다
벌레의 몸이 된 나뭇잎을
뛰는 심장처럼 물들이자는 것이다
엎은 다음에 차지하지 말고
엎어서 나눠 갖지도 말고
엎고 엎어서, 엎고 엎은 다음에
대지가 되자는 것이다
엎고 엎고 계속 엎자는 말이다
우리를 옭아매는 굴종을
무기력과 좌절을
엎다가 죽자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도 사랑도 태양도
잠시 빌려 쓰고 제자리에 돌려놓자는 것이다
엎어서 바람이 되자는 말이다
엎어서 꽃이 피게 하자는 말이다
내일도 없이,
오늘 엎자는 것이다
- 『정오가 온다』, 삶창, 2015.
* 좋은 세상은 그냥 오는 것은 아니다. 운동이 있어야 한다. 펌프가 물을 긷기 위해서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있어야 하겠지만 결국 물이 물을 쏟아내는 것이다. 아랫물이 윗물 자리로, 쓸모를 다하여 사라진 그 자리로 계속 차오를 때 물은 물로서 존재한다. 몸 안의 물이나 피도 멈추지 않아야 생명인 것을 생각하면 운동 자체는 절대 선과 같은 것이라 우겨도 되지 않을까.
엎는 것도 운동이고, 운동은 좋은 세상을 가꾸는 방편이다. 다만, 엎은 이후에 주체가 되어 뭔가를 차지하거나 나눠 갖는 것을 시인은 경계한다. 운동이 운동 자체에 전념하지 않고 순수성을 의심받게 되면 운동의 동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며, 저항의 빌미를 주거나 좋은 세상을 원하는 다른 운동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운동은 자체로 선이라고 했지만 운동의 방향성을 가져야 봉기(蜂起)가 된다. 벌 떼가 되어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것을 엎는 쪽으로 운동할 때라야 힘이 실릴 것이고, 그 힘으로 좋은 세상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이라 믿는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