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도 없이 사랑하다 / 최창윤
희망도 없이 사랑하다 / 최창윤
집 나서자
눈 시린 구름들이 나를 쫓아왔었네
잊고 있었던 그녀의 포근한 어깨
나는 희망도 없이 사랑했었네
눈 그림자 비낀 산릉선 따라 그녀는
모질게도 따라왔네 울음소리로 따라왔네
세상 어디에도 따라오던
그녀의 입 맞추고 싶은 얼굴
마음 지우는 일이 그리 쉽던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만큼씩 그리웠네
산그늘 속에도 그녀가 숨어 있네
세상이 온통 그녀 걸음걸이로만 흔들리네
내 머린 바보, 잊어라 하고
내 가슴은 놓치지 마라 하네
널 그러쥐고는
희망도 없이 나는 너에게 매달렸었네*
지치지도 않고 다시 봄이 오네
눈끝 매섭게 얼어붙었던 내 그리움
붉은 핏방울 터뜨리며 새 순 틔우네
동백꽃 봉오리처럼 아무렇게나,
여린 목숨 떨구며 엉엉 울었네
환한 봄날, 희망도 없이
* 올리비아 뉴튼 존의 <Hopelessly Devoted To You>
- 『잘 가라, 버디 홀리』, 북인, 2015.
* “어쩌면 도서관의 책들은 내 유년의 프롤로그가 아니었을까”(「시립 중앙도서관」에서)와 “밤이면 불 꺼진 11층 8인실 병원 복도에서 이 악물고 록큰롤을 들었다”(「리튬」에서)라는 구절을 지나오면서 시인의 문학적 기질은 어린 시절의 독서 그리고 무시로 외웠다가 생의 굴곡점마다 듣게 되는 팝송에 기인한 바가 크겠다 싶다.
독서를 통해 생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생은 자신에게 잽을 날리고 어퍼컷을 명중시키기도 한다. 어쩔 도리 없이 생의 불가해한 폭력성을 받아들인다 해도 어머니의 암 투병에 이은 시인의 암 발발과 이른 죽음을 생각하면 쓸쓸한 마음이 커진다.
이 시는 고통의 나날, 그렇지만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빛이 가까이 혹은 멀리, 다가오거나 사라지는 그 어느 시점에 씌어졌을 것이다. 그 무렵의 시인에겐 “Hopelessly devoted to you”라는 노랫말이 자신의 몸을 그대로 관통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나 자신의 처지와 주변의 환경으로 어떤 희망을 갖기 어려웠던 만큼 시인의 고민이 깊다. 노래에서는 연인이 떠나려 하지만(you pushed my love aside) 시에서는“세상 어디에도 따라오던” 그녀로 묘사되어 입장에 차이가 있지만, 희망도 없이 사랑을 구해도 되냐는 스스로의 물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너 자체를 희망이라고 말하는 낭만주의자도 있을 수 있고, 해마다 돌아오는 봄을, 봄을 오게 하는 시간을 희망이라고 부르는 낙관주의자도 있을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같이 울고 싶은 마음이다. “희망도 없이” 살면서 너를 앓는 세상에 자꾸 희망을 입히려고 하는 것도 스스로의 위안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