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영이 / 권혁소
규영이 / 권혁소
아 씨발, 오늘 7교시까지 있는 날이잖아
아 씨발, 오늘 체육도 안 든 날이잖아
유일하게 7교시까지 있는 화요일
우리 학교에서 제일 무거운 규영이가
운동장을 건너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포수용 글러브에 주먹을 팍팍 꽂으며
탄식처럼 뱉은 말이다
혹여
아 씨발, 오늘 음악 들었잖아 할까봐
살짝 긴장되는 아침이다
- 『아내의 수사법』, 푸른사상사, 2013.
* 욕이 상쾌하게 느껴졌던 기억으로, 처녀 선생에게 씨(씨앗) 8이 맞다고 “씨팔! 확실한 기라예!”라고 외치던 병채 이야기(배한봉, <씨팔!>에서)가 생각나고, “그래, 그리움을 훔쳤다, 개새끼야!”(공광규, <시래기 한 움큼>에서)라며 야박한 인심에게 주먹을 날렸던 회사원이 생각난다. 여기에 더해 규영이의 “씨발”은 어떤가.
몸이 무거운 규영이가 입이 무겁지는 않은지 “씨발”을 남발한다. 음악 선생을 “살짝 긴장”시키기도 하지만 그렇게 싫은 내색은 아니다. 욕을 욕처럼 느끼지 않는 것은 그 욕이 일상으로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욕 들을 만한 일에 욕이 있을 때 더욱 그럴 것이다.
규영이는 몸을 움직여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렇게 해서 주위와 소통하며 지내고 싶다. 마찬가지로 영수는 노래하고 싶고, 은주는 그림 그리고 싶고, 철수는 사진 찍고 싶고, 민서는 소설 쓰고 싶고, 인영은 상담하고 싶은 것인데, 또 영민이는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 싶은 것인데 기초니 교양이니 필수니 하면서 수업을 7교시까지 돌리니 욕이 나올 만도 한 것이다.
규영이를 십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뭔가.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 외우는 것보다 휴지 버리지 않는 생활태도가 중요하고 거짓을 일삼지 않는 정직함이 중요하지 않나. 사회 지식을 암기하기보다는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내는 게 중요하고, 과학 지식을 맹신하기보다는 생태를 생각하는 마음이 우선이지 않나. 국어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며 정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 비판할 줄 아는 게 더 기본이지 않나. 이런 생각들에 여러 사람이 공감하고 있지만 학교 수업이나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러지 못한 게 현실이다.
교육이 책상에 앉아 있는 물리적 시간에 비례할 리 없고, 교과서 위주의, 그것도 하나의 역사관이나 인생관을 담으려는 교육과정이라면 더더욱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줄 리 없다. 일하는 것 못지않게 쉬는 게 중요하고,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노는 것도 필요하다면 규영이가 야구에 몰입하면서 자신을 소리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면, 규영이의 “씨발”하는 소리도 조금씩 줄어들지 않겠나. 긴장 탄다는 음악 선생은 다시 생각해 보니, 규영이의 “씨발” 소리에 격하게 공감하며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같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