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에 대하여 / 김요아킴
대구 교동시장에서
미안함에 대하여 / 김요아킴
단 한 장의 만 원 권을 건네고
거슬러 받아야 할 여러 장의
그 지폐에 미안하다
저녁 불빛이 켜지고
맵쓰린 바람이 하혈하는
수정역 입구, 불안하게 포장을 친
그 한 끼의 뜨거움에 미안하다
세상에 태어나 그리운 이
한 번도 호명하지 못한
언제 쫓길지 모르는
풍성한 식탁으로 초대하는 부부의
여린 그 손짓에 미안하다
새벽을 서두르며
싱싱한 야채를 보듬고
떡쌀 담근 방앗간을 기웃거리며
숙면을 취한 고추장 양념을
새로이 환생시킬 두 사람의
맛난 노동에 미안하다
얼마 되지 않을 이문에도
웃음을 버리지 않고
툭툭, 불거지는 관절마디로
꼬마 손님까지 채워주는 한 종지 사랑
쉽사리 은행인출기에서 꺼낸
나의 자본과 맞바꿔지는 그 역설에
더욱 미안하다
- 『행복한 목욕탕』, 신생, 2013.
*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아 자릿세 물리고도 상당한 수입을 얻는 포장마차도 있지만, 시인이 목격한 부부 포장집은 이웃의 신고나 단속반의 조치로 “언제 쫓길지 모르는” 불안한 영업을 하고 있다. 게다가 “툭툭, 불거지는 관절마디”는 뇌성마비를 앓는 장애인 부부를 연상케 한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중에도 미소를 지으며, 좋은 재료로 정성껏 요리하고 손님에게 인정을 내는 부부의 모습이 꽤나 탐탁했을 것이다.
시인은 부부의 “맛난 노동”과 제공된 서비스에 비해 자신이 지불해야 할 돈이 터무니없이 적다고 생각한다. 어쩜, 더 큰 효용을 얻었으니 미안해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하겠으나 세상인심이 꼭 그런 건 아니다. 돈으로 행세하고 더러 겁박까지 하여 노동자를 거리로 내미는 냉혹한 인정머리도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가진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가는 사회인 만큼 있는 사람이 인심을 더 내는 게 맞다고 해도 애써 듣지 않는 티가 난다.
그래도 또 말해야 하리라. 복되고 평등한 세상은, 부모를 잘 만나서 조금 더 잘 사는 것에 대해서, 노동에 비해서 너무 많은 돈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서, 가진 것을 충분히 나누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질 때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는 거라고. 오뎅이나 국수 한 그릇을 두고 서비스든, 돈이든 더 주지 못해 서로 미안해하는 마음이 있어 한세상 돌아가는 것이라고.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