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평행봉 고수
톰소여와허크
2015. 12. 10. 08:42
평행봉 고수 / 이동훈
밖으로 돌다가 만난 평행봉 고수. 다리 끝으로 차오르는 폼이 국가대표급이다. 집 대표 자격으로 봉 잡고 서너 차례 흔드니 팔다리에 쥐가 논다. 고수는 혀를 찬다. 중요한 것은 기본이고, 기본은 버티기란다. 고수답게 날아서 착지한 것까진 좋았는데 수업료로 담배 한 가치를 빌어서 살짝 김이 샌다.
고수는 철봉으로 떠나고, 평행봉 자리에 걸터앉으니 잠자리가 따라 앉는다. 잠자리 자취 따라 몸을 뒤로 젖히니 하늘구멍이 아찔하다. 가랑이를 양쪽으로 벌린 채 버티는 것과 떠나는 것 사이, 생의 평행에서 탄력 있게 뜰 것을 기대하지만 주정꾼의 노래만 가깝다.
실업은 취업의 다음 편일 뿐이고, 실망은 기대의 후속 편일 뿐이다.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는 것과 버티고 싶은 만큼 버티는 것의 종잇장 차이를 화두 삼아 평행봉 고수의 문하가 되기로 한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최종 편은 뒤로 미룬다. 실업도 실망도 심심해지는 하루하루, 평행봉 고수들이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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