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고추 / 이외분
톰소여와허크
2015. 12. 16. 17:38
고추 / 이외분
태풍 때무네 고추가 누워버릿다
고추가 누워버럿다
어둡도록 일바신다
아구 1년 농사
서가 잇어야 도는디
기가 찬다
- 『시가 뭐고?』, 삶창, 2015.
* 칠곡 할머니들의 시 모음집에 실린 작품이다. “시가 뭐고 / 나는 시금치씨 / 배추씨만 아는데”(소화자 할머니)라며 자신의 목소리를 웬만한 시인 못지않게(어떤 면에서는 더 감동적으로 더 설득력 있게) 당당히 들려준다.
“고추”는 누우면 안 된다는 말을 듣는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라도 직접 농사짓는 할머니들께 여쭤 보기로 하자. 그런데 고추가 고만 누워버렸으니 얼마나 애가 탈 것인가. 어둡도록 일바시는(일으켜 세우시는) 모습에 독자는 조금 웃는다. “서가 잇어야 도는디”(서서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니 기가 찬단다. 여기서 “도는디”를 애써 표준어로 바꾸지 않아서 다행이다. 식물이든 사람이든 기(氣)가 돌아야 정상이긴 매한가지인데 그게 그만 돌지 못한다는 의미도 무심중에 있는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에 애, 어른의 구별이 있을 리 없다. 거짓 없고 의미 있는 표현일수록 막힌 기를 뚫어주고 쓰러진 기를 세워줄 것이다. “글자 배워 아들한테/ 편지 쓰네”(김판임 할머니)처럼 글은 스스로를 서게도 하고, “검은깨 농사지어서/ 또 다 농가 먹어야지”(박차남 할머니)처럼 화기애애한 마음을 살게도 하는 것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