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이발사의 아들은 / 최욱경

톰소여와허크 2016. 1. 10. 13:10

 

최욱경, Through the sunglas, 1967.

 

이발사의 아들은 / 최욱경

 

이발사의 아들은

하마처럼 웃는다.

하마처럼 웃는다.

얌전 빼는 여학생은

쥐처럼 히쭉거린다.

쥐처럼 히쭉거린다.

 

나는 온통 얼굴로 웃는다.

다시 울지 않으려는 맹세처럼

온통 웃는다.

언제고 바다의 침묵처럼

조용한 미소 배울 때까지

맹세처럼

온통 웃는다.

 

이발사의 아들은 하마처럼 웃는다.

 

- 『낯설은 얼굴들처럼』, 열린책들, 1989.

 

 

*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캔디)와 “You'll never see me cry"(겨울왕국 - Let it go )라는 노랫말처럼 시인도 “다시 울지 않으려는 맹세”를 거듭한다. 누구도 울긴 싫다. 하지만 삶이 휘두르는 따귀를 요리조리 다 피할 수는 없다. 캔대 역시 주제가와 반대로 매회 우는 장면을 연출하고 명랑만화답게 금세 웃는 얼굴이 된다. 그러니 잘 웃거나 잘 울지 못하는 사람을 캔디나 엘사가 대리 만족시킨 면도 있어 보인다.

슬플 때 우는 감정도 자기 배설의 시원함이 있겠지만 일부러 울음을 연습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잠시라도 웃기를 바랄 것이다. 다들 원하는 웃는 얼굴은 또한 그 사람의 개성이기도 하다. 크게 입 벌리며 웃거나 작게 입 오므리며 웃거나, 활짝 웃거나 실실 웃거나, 웃어서 웃거나 웃겨서 웃거나, 하마처럼 웃거나 쥐처럼 히쭉거리거나, 터뜨리거나 쪼개거나 할 테다. 시인은 이 중에서 온통 얼굴로 웃기를 희망한다. 그 웃음은 앞서 말한 대로 다시 울지 않으려는 다짐이기도 하다. 세게 웃으면 다가오던 울음도 나가떨어질지 모른다. 아니, 실제로 그런 주문을 담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하마처럼 웃는 게 어떤지 감이 안 오지만 자꾸 생각해 보는 것으로도 웃음을 지을 수 있다. 복을 바라는 것보다 복을 짓는 게 지혜롭듯이 웃음도 그럴 것이다.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지만 마음먹은 만큼 달라지는 이치도 있다. 새해엔 웃자.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