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 이원규
꿩 / 이원규
이 춘정을 어찌하랴
식전부터 끄응끙 꿩이 운다
마치 제 이름을 잊은 듯
누군가 새가 아니라 우기기라도 하는 듯
끄응끙 머리 나쁜 수꿩이 운다
야생계에 비만은 없지만
장끼들의 몸무게 편차 석 냥도 안 되지만
그래도 꿩은 활주로가 필요한
비만 증후군
이따금 돌만 굴러도 새가슴
뛰지도 날지도 못하고 두리번두리번
정 다급하면 날갯죽지에 얼굴을 처박고
나 몰라라 나, 몰라 하지만
그래도 꿩은 빠르다
머리 좀 나쁘다고 자존심마저 없으랴
냅다 뛰다
미친 듯이 날아오르다
산그늘에 도사린 전깃줄
목이며 날개가 꺾이기도 하지만
제 탓이 아니므로
설사 추락하는 샤브샤브가 될지라도
정면의 비만, 정면의 날개
애써 피해가지 않는다
주문을 외듯이
아침부터 수꿩이 운다
나는 꿩이야 훨훨 나는 꿔엉
식전부터 염불선의 젊은 처사가 운다
- 『강물도 목이 마르다』, 실천문학사, 2008.
감상- 이 시를 읽고 같은 제목의 동화(이오덕,『꿩』)를 떠올렸다. 동화의 주인공은 힘센 아이들의 책보퉁이를 대신 들어주는 못난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날개를 쫙 펴고 꽁지를 쭉 뻗고 아침 햇빛에 눈부신 모습으로 산을 넘어가는 꿩”을 보고 자신도 꿩처럼 소리치면서 책보퉁이를 던지게 된다. 자기 안의 비겁을 버리고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다. 한마디로, 못난 놈이 주눅과 의기소침을 버리고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다.
이 시의 꿩은 자유로운 이미지보다는 “비만”한 데다 “머리 나쁜” 특성이 우선 강조되어 있다. 실제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에 맞았다는 새는 꿩 말고는 잘 없긴 하다. 덩치가 있는 데다 덤불을 좋아하는 속성이 있어서 몸을 움직이기가 수월찮았을 것이다. 그런 꿩이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반대편에서 푸드덕대며 스스로를 사지에 몰아넣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으면 꿩의 비만을 탓하려는 마음이 줄어든다.
꿩은 비만의 몸이지만 그런 콤플렉스에 굴하지 않고 냅다 뛰고 난다. 날갯짓 할 때는 퍽이나 요란하지만 좋게 보면 거침없는 거다. 수꿩의 울음은 비만의 몸과 날개 사이에 있다. 우호적이지 않은 현실과 스스로 비상할 자유 사이에 울음이 있는 것인데 세속의 욕망을 산으로 가져온 듯한 “젊은 처사”의 울음을 매개하고 있다.
젊은 처사는 세사를 벗어나서 훨훨 날고 싶어 한다. 오래전 이원규 시인도 그런 자유를 꿈꾸고 지리산에 들었는지 모른다. 자유에 대한 의지는 부당한 굴레를 벗어던지는 것에서 시작해야겠지만, 남의 책보퉁이뿐만 아니라 스스로 짐 진 것을 버릴 때 진정한 자유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자유는 필생의 과제가 아닌가. 꿩, 꿩, 꿩 암만 울어도 미치지 못할, 그럼에도 울어야 할 사연이 저마다 있을 줄 안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