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기둥 / 신준수

톰소여와허크 2016. 2. 7. 10:53




기둥 / 신준수


고추밭은 바짝 약이 오르고

6남매가 모였다

한철 끊겼던 소식 다시 이어지듯

오래 전 이 집을 지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우리 모두는 기둥이라고

귀가 닳도록 들었다

정말 기둥인 줄 알았다

그 후 기둥들 다 빠져나간 집은

그거 보라는 듯 기울어져 갔다


고추밭에 있으리라 여겼던 어머니가

옆방에 누워 있다

빨갛게 고추는 약이 올랐는데

첫물고추들이

끙끙 앓으며 마르고 있었다

이렇게 '매운방'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 『매운방』, 애지, 2014.

   * 어머니는 자식의 집이다. 집의 쓸모보다는 집의 건재와 관련된 것이 기둥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기둥처럼 떠받든다. 기둥도 대들보를 받칠 재목이 있고, 동바리를 면하지 못하는 것도 있겠으나 요긴하지 않은 기둥은 없다. 그 기둥이 각각의 집을 이뤄나갈 때까지 어머니의 고추 농사는 꽤나 매웠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집이 위태롭다. 약이 바짝 오른 고추에도 어머니 손이 타지 않는단다. 자식 같은 고추를 건사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매운방'에 누워버린 것이다. 고추와 마찬가지로 "끙끙 앓으며 마르고 있"는 어머니로 인해 한 집의 역사가 휘우듬해진다.

매  운 냄새에 눈이 따가워 온다면 하나의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매운 방엔 깊은 것이 산다. 슬프면서 아름답고, 아프면서 환한 것이.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