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을 읽다 17 / 노태맹
碧巖錄을 읽다 17 / 노태맹
1.
담배를 피우다 남보라빛 두 눈에 긴 노랑 혓바닥을 가진 새끼손톱만한 꽃을 발견하다. 사무실에 들어가 인터넷으로 한 시간 만에 그것이 달개비꽃임을 찾다. 바로 그 이름을 불러보기 위해 느티나무 그 아래 달려가보니 누군가 화단 잡초를 깨끗이 베어놓았다. 달개비꽃은 없고, 이름 몰랐던 꽃에 대한 기억만 남다. 해도 사진 한 장 못 남긴 걸 아쉬워할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누가 느티나무 아래로 후라이드 치킨과 콜라를 들고 오고 있다.
2.
무엇이 선인가 물었다.
선이 선이라 대답하였다.
달이 둥글기 전에는 어떠한가 물었다.
붉은 꽃을 세 개 네 개 삼켜버렸다고 하였다.
다시 온전히 둥근 다음에는 어떠한가 물었다.
푸른 칼을 일곱 개 여덟 개 토하였다 하였다.
어리석은 놈
(대강 상상하지 마.)
달 떠내려간다, 저 강물이나 잡아라.
3.
노사정이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대타협에 협의했습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이날 오후 6시께 정부 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4인 대표자회의를 열어 핵심 쟁점인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대한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일반해고는 저성과자나 근무불량자를 해고하는 것으로, 현행 근로기준법은 아직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완화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근로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것입니다.(MBN 뉴스, 2015.9.14)
성서 공단 네거리 환한 길 위
마이크를 잡고 선전전을 하던 김 위원장이 갑자기
수천의 달개비꽃들로 날아가버렸다.
붉은 백일홍꽃 다시
푸른빛으로 돌아가는 계절이긴 했다.
어디서 다시 그를 찾을까?
- 『벽암록을 불태우다』, 삶창, 2016.
* 벽암록과 일상을 넘나들며 엮은 연작시 중의 하나다. 벽암록을 살피지는 못했지만, 중간에 인용한 구절은 선문답 형태로 진리의 일면을 고민케 하는 화두로 봐도 되겠다. 화두란 게 대개 답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니 스스로 깨치는 자족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내 상식엔 그렇다는 얘기다.
달이 둥글어지기 전에 세 개 네 개 삼킨 게 뭔지, 둥글어진 후에 일곱 개 여덟 개 토한 게 뭔지 그 정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그것이 뭔지를 놓아버리는 순간 단순해진다. 세 개 네 개 먹어서 든든해졌으면 먹은 이상으로 일곱 개 여덟 개 내놓으라는 이야기다. 이 구조가 순환만 될 수 있다면 참으로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구조라 하겠다. 나는 이 생각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뉴스 기사는 이와 반대되는 상황으로 보인다. 노동 유연화 정책 기조에 따라, 저성과자 등을 좀 더 쉽게 해고하고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이윤 불리기에만 골몰하여 이익 분배에 인색하고 협업까지 해치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책임을 노동자 개개인에게 돌리기 딱 좋은, 오히려 비인간적이고 비생산적인 행위라고 강변이라도 하고 싶을 텐데, 섣부른 합의(?)에 노동자로 목소리를 내던 김 위원장의 입지는 더 초라해졌겠다.
달개비는 가만있는 것 같아도 존재를 위해서, 꽃을 위해서 최선의 노동을 다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노동자 김 씨 이 씨도 생계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더 많은 것을 내놓으려면 노동이 꼭 필요하다. 이 노동을 벌초하듯 없애고 그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세력과 힘 있는 자가 마땅찮고 두렵긴 하지만, 누구든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밀고나간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시인은 벽암록을 읽고, 나는 벽암록을 읽은 시인을 읽으려고 한 것이지만 결국, 읽고 싶은 대로 읽은 거다. 다만, 달개비꽃을 치기 전에 달개비꽃을 오래 쳐다보고 헤아리는 마음이 선에 가깝다고 말한다면 시인도 동의해 주지 않을까 싶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