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 아래서 /이동훈
가을이면 느티나무가 좋았다....
두 해 전 말라죽기 직전
막걸리 대여섯 동이 빨아들이고
살아났다는 느티나무였다.
그리고는 나이를 거꾸로 먹기 시작했다.
바스라진 껍질을 떨어뜨리고
미끈한 맨살을 내놓으며
갈수록 참해지고 야해지다가
드디어 앞잎이 붉게 타올랐다.
낮술 걸친 날
느티나무 아래 일없이 서성거리다가
느티나무 이파리처럼 빨갛게 물들어
느티나무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막걸리 두 잔에 되돌릴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고
그런 공짜가 있겠냐고
주름진 하늘이 묻고 있었다.
술깨는 저녁에
느티나무 아래 서서
느티나무도 공짜 술을 먹지 않았느냐고
그 덕에 지금 불타고 있지 않느냐고
이제 나도 젊음을 지펴
생명을 한껏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부르르 떨다가 돌아섰다.
느티나무 아래
바람이는 소리가 사납게 들렸다.
그런 가을이었다.
*감상: 가을이 몰려오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생각에 당황할 때가 있었다. 지금껏 무얼하고 산거지? 묻고 또 물었다. 이 땅에 와서 깊은 뿌리 내리지 못했다. 탄탄한 줄기도 열매도 수확하지 못했다. 이제 가을인데 어쩌나 한탄했다. 자발적인 죽음이란 언제나 경계의 그늘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왜 죽냐고 묻지 못했다.
낮술 한 잔에 화풀이를 할까 고민했지만 이미 취해버린 나무와 하늘은 모든 걸 벗겨내고 있었다. 결국, 알몸뚱이로 다음 계절을 향해 가야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아직 남아있는 시간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 자체로도 살아있는 이유라고 변명하며 살고 싶다. 이런 상황이라면 술은 참 좋다. 친구가 곁에 있었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자~ 한 잔 마시고 힘내.(라윤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