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로가 보이는 식탁 / 이윤학
사일로가 보이는 식탁 / 이윤학
옥수수 끓인 물 훈김을 들이켜다 보았다
사일로 사이 삐뚜름한 샛길이
리기다소나무 드높은 달밤을 불러왔다
뒤축이 내려앉은 봉고차는 공터에 세워두고
야산을 오르는 사내의 비닐봉다리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소주병들이 부대꼈다
옥수수 밭고랑을 따라가는
실로폰 소리가 사일로에 저장되기도 했다
옥수수들이 길어지는 혓바닥을 내둘렀다
입을 다물어도 입안에 들어오지 못한 혀들이
톱니를 감아 돌렸다
리기다소나무 숲에는 무덤이 많았고
드러누워 병나발을 부는 사내는
주인 없는 이름을 불러댔고
누군가는 숨이 막혀 대답하지 못했다
사일로가 보이는 식탁에 앉아
옥수수 끓인 물 훈김을 코로도 들이켰다
막다른 골목까지 걸어간 사내가
풀을 쥐고 매달려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숨을 쉬느라 목소리를 들려준 적 없었다
- 『짙은 백야』, 문학과지성사, 2016.
* 사일로는 겨울철 사료로 쓸 수 있도록 작물과 풀을 베어 발효시키는 저장탑이다. 식탁에 앉은 시인은 창문으로 사일로를 지나는 사내를 목격한다. 옥수수 밭 지나 야산을 오르는 사내는 누군가의 무덤에서 구원(舊怨)과 슬픔과 자책으로 병나발 불렀을 것이다.
서로 무관할 수도 있는 식탁의 시인과 창밖의 사내는 옥수수 이미지로 연결된다. 식탁의 시인이 “옥수수 끓인 물 훈김”을 들이켰다면 창밖의 사내는 “옥수수 밭고랑”과 베어진 옥수수가 재여 있을 사일로를 지난다. 상황에 대한 묘사는 있지만 두 사람의 행동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옥수수 알맹이를 흔히 이빨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빨 다 털리면 말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있지만 시인은 센 이빨을 감추며 말을 아끼는 쪽이다.
시인과 창밖 사내는 잘 아는 사이도 생판 모르는 사이도 아닌 듯하다. 거울 앞 이상 시인이 그랬듯이 거울 앞 사내와 거울 속 사내로 마주하되 속마음을 다 드러내지도 않고 깊이 소통하지도 않는다. “막다른 골목까지 걸어”왔으나 “숨이 막혀” 말을 못 하고, “숨을 쉬느라” 더욱 말을 못 한다. 한숨 돌릴 여유도 없는 삶의 벼랑이 느껴지고, 어떤 자세로든 존재가 직면해야 할 고통을 비켜갈 수 없을 것이란 예감도 든다.
숨 막히는 순간에도 시인은 시 한 편에 골몰하여 말문을 트는 데 전력해야 할 운명이다. 시인은 옥수수 물로 갈증을 풀기도 하련만, 거꾸로 갈증을 위해서 버즘나무가 보이는 식탁에 옥수수소주라도 두고 싶은 마음은 뭔가.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