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피었으므로, 진다
2012년 백흥암
이산하, 『피었으므로 진다』, 쌤엔파커스, 2016.
- 『양철북』에도 소개된 백구두 법운 스님과의 인연 이후, 줄곧 이어졌던 산사 기행이 책으로 엮였다.
시작은 미황사다. 법정 스님이 쇠약해져 병원에 있을 때 금강 스님이 가수 노영심 편에 미황사 동백을 병원으로 보냈단다. 법정 스님은 “내가 못 가니 그대가 왔구나.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다”는 화두 같은 말을 남기고 다음날 입적한다. 시인이기도 한 저자는 동백이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을 버리는 것을 바라보며, “눈물은 아래로 내려가고 숟가락은 위로 올라갈 것이다. 밥그릇이 비워져야만 모든 것은 수평에 이른다”는 깨달음의 일면을 시적인 언어로 전달한다.
은해사 성보박물관에서 봤던 ‘불광’이란 글씨에 佛자의 획 하나가 유난히 길게 이어진 것을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남아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글을 받아 적을 나무판자가 적었는지 주지 스님이 잘라버린 것을 추사가 알고 현판을 태우고 다시 고쳐 짓게 했다는 거다. 손가락 하나 길다고 자르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중얼거림과 함께. 비구니 스님 선방인 백흥암 6폭 주련도 추사의 작품이라는데 혹 보게 될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신촌 봉원사는 기형도, 박상륭과의 추억이 깃든 곳이란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좋게 읽고 기형도에게 선물을 준다. 기형도와 함께 봉원사를 답사하며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기형도는 저자가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감옥에 있을 때 박경리의 《토지》한 질을 넣어주었다고 한다. 갑신정변 모의를 한 곳이고, 정도전과 추사의 글씨, 장승업의 신선도 병풍 그림도 있다 하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실제, 이 글을 읽고 찾은 곳은 통도사 자장암이다. 자장암은 자장 스님이 금강계단을 만들어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할 무렵 수도하던 암자란다.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개구리를 살게 해주었다는데 그 구멍과 개구리를 지금도 운만 좋으면 볼 수 있단다. 물론, 이번 답사에서 구멍은 볼 수 있었지만 개구리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불심이 지극한 사람만 볼 수 있다니 기대는 말아야겠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찾은 절은 산사가 아니라, 팽목항법당이다. 아이들이 수장된 진도 바다가 욕조로 변해 저자를 옥죄어 온다. 필화사건으로 욕조에서 물고문당하며 혼절했던 상처가 살아난 것이다. 아이와 부모의 한이 치유되지 않을 것이지만 치유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할 것을 말한다. 스스로 마음의 쪽창을 열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 왔듯이.(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