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귀정 눈꼽재기창 / 신순임
영귀정 이호문(二乎門)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1k1&logNo=100086480875
영귀정 눈꼽재기창 / 신순임
두둥실 흘러가는 보름달 따라
밤 마실 나섰는데
희끄므리한 안강평야 뒤로
고층건물 야경 물어 나르는 반딧불
회화나무 꽃등 켜 밤길 밝히네
솟을대문 앞에 서서
인기척 안으로 실어보내도
문지기 소식 없어
행랑채 눈꼽재기창 밀어보니
성독*소리 취한 반딧불
상쇠 상모 돌리듯 빙빙 뜰 돌리고
배롱나무 걸터앉은 보름달
한자 한자 받아 적으며 글월 훔치느라
모기가 물어도 모르는데
누(樓)에 오르니 무성한 나락 그림자
독락당 가는 길 가리어
옥산길 가늠도 아니되는데
회재 할배 시 두수
‘영귀정을 오르며’가
달빛에 도드라지네
* 성독 : 글을 소리 내어 읽음
* 회재 : 이언적(1491-1553)
- 『양동 물봉골 이야기 둘』, 시문학사, 2016.
* 여강 이씨 문중에서 이언적 선생을 기리는 곳으로는 이언적이 태어난 양동마을과 낙향해서 몸을 의탁한 옥산마을이 있다. 선생과 정실부인 사이엔 적자가 없어 5촌 조카 이응인을 양자로 받아들여 무첨당을 종가로 해서 지금껏 뒤를 잇고 있다.(시인은 종가의 며느리이기도 하다). 친자이면서 서자인 이전인은 유배지까지 따르며 자식 된 도리를 다하여 독락당 재산을 물려받았으니 또한 지금껏 후손이 뒤를 잇는 계기가 되었다. 옥산서원의 서얼 허통 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했던 양 집안은 무시로 변하는 세태 속에서도 옛 문화와 전통을 잘 이어오고 있다.
영귀정은 무첨당 위쪽 언덕에 자리 잡아 안강평야가 내다보이는 곳이다. 안강평야 저쪽 편엔 독락당이 있다. 논어에서 인용한 걸로 알려진 영귀(詠歸)는 벼슬에 연연하기보다는 맑은 물에 놀다가 노래하며 돌아오겠다는 것인데 실제 이언적 선생의 시에도 오랫동안 속세에 시달린 몸을 말하며 술 한 단지 이고 언덕을 오르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종부인 시인은 밤 마실 나왔다가 반딧불이 따라 영귀정에 이르렀나 보다. 닫힌 대문 대신 손바닥만 한 눈꼽재기창으로 반딧불을 다시 보고 마치 선생의 글 읽는 소리 따라 반딧불이가 춤추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이미 『무첨당의 오월』, 『앵두세배』, 『양동 물봉골 이야기』 등으로 전통 문화와 종가 문화 그리고 세상살이의 이모저모를 풀어내왔던 시인답게 보름밤의 풍경을,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순간적으로 잘 포착해낸 것이다.
영귀정 들어가는 솟을대문엔 이호문(二乎門)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앞의 논어에서 가져왔다는 말이 맞겠지만 손님이 두 번은 불러야 나온다는 의미로 장난스럽게 새기기도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생각이 문득 든다. 두 아들을 생각하며 양동 무첨당 쪽으로 한 번, 옥산 독락당 쪽으로 한 번 공평하게 불러보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당신의 상식에 따라 법통을 잇는 일도 중요하고 그 못지않게 피를 잇는 것도 중요하다면, 더하고 덜할 것 없이 둘 다 적자(嫡子)인 거다. (이동훈)
영귀정 이호문(二乎門) 사진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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