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 김태운
가시고기 / 김태운
조막만 한 생선 한 마리
애간장에 졸이고 살만 발라
손자 밥그릇에
얹혀주고 또 얹혀주고, 마디 굵은 손 당신은
정작 당신은
대가리, 가시, 가시
그 주름 깊은 몰골은 가시고기
서산,
저 너머로 넘어버린 망령
아흔 넘어
부엌에 숨어들어 생선 한 마리 한입에 넣고
우물우물 철딱서니, 망령 난
가시
가시
우리 할머니
아흔 넘어 철딱서니
우리 할머니 아흔 넘어
- 『칠색조 변주곡』, 시산맥사, 2015.
* 제주 출신 시인은 4.3을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가계는 4.3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시집 서문 격으로 ‘4.3은 말한다’ 기사를 소개한 시인은 할머니와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덧붙인다.
“노인(4.3 희생자)이 살해당하자 졸지에 홀어멍이 되어버린 시모까지 모셔야 했던 과부가 나, 테우리(시인)의 할머니이다. 이 분의 또 다른 불행은 혼자서 다 키운 아들을 6.25 전장에 바친 것이다. 전사한 할머니의 아들, 이 분은 나의 백부이자 양부가 된다. 이어서 막내딸이 예기치 못한 병으로 사별한다. 그 후 임종 시까지 할머니의 시련은 그칠 새가 없었다.” - ‘제주 4.3사건과 우리 할머니’에서
이념 갈등과 전쟁으로 인해 남편과 아들을 한참 앞세워야 했던 시기야말로 할머니에겐 애간장 타는 시간이었을 것이고, 이후로도 남은 식구를 건사하기 위해 애간장 졸이는 나날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집을 지켜야 하는 할머니와 집의 장자로 큰아버지를 잇게 된 시인은 서로에게 각별한 존재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할머니의 “주름 깊은 몰골”과 상처가 손자의 삶과 무관할 수 없고, 철든 손자는 할머니를 이해하는 마음을 낼 것인데, 그런 마음이 “생선 한 마리”를 굽는 것에도 “애간장에 졸이고”란 표현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 할머니”란 표현은 4.3이 제주 도민 전체의 상처이기도 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못한 인류애의 상처이기도 하다는 시인의 간접 표명으로 읽을 수 있다.
이념 논쟁만 나도 불에 덴 듯 놀라고 연좌제의 굴레에 아파하면서도 좋은 것은 손자 쪽으로 밀고 자신은 가시만 챙기면서 악착같이 살았을 할머니는 아흔이 넘어서야 생의 긴장을 놓았나 보다. 끝내 치유되지 않는,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이다.
“장손 하나라도 건져보려던 할머니/ 지금쯤, 그 눈물 거두셨을까”(‘우리 할머니’ 중) 헤아려보는 시인의 마음이 따습고 아리다. 할머니의 망령은 좋은 세상 만나 편히 쉬어야 할 것이나, 그 좋은 세상을 위해서 망령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인은 애써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리라.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