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뜨락 / 오세영

톰소여와허크 2017. 1. 1. 11:57



2016 가을 한티성지


뜨락 / 오세영


쓸어 무엇하리요.

사미沙彌야,

비를 거두어라.

뜰은 원래 그들의 침실

먼 여행에서 돌아와 피곤하게 잠든

숨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이제껏 허공에 매달려 살다가

드디어 찾은 대지의 안식,

팔랑,

도토리 잎새 하나 떨어져

상수리 마른 갈잎 다소곳이

감싸 안는다.

사랑은 인간만이 하는 것은 아닌 법,

그 위로 후두둑

가을 햇살이 내린다.

낙엽이나, 들풀에 맺힌 이슬이나, 이리 저리 구르는 돌멩이나

심지어는 깨어진 사금파리까지도

사물이 자리한 이 지상의 모든 곳은

가장 편안한 존재의 침실,

사미沙彌야,

그만 비를 거두어라.

우주의 피곤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 『벼랑의 꿈』, 시와시학사, 1999.



* 어느 산속 절간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부지런한 사미승은 자기 할 일 한답시고 절 마당을 싸라락싸라락 빗질하고 있을 것이고 잠을 방해받은 손님은 마당을 내려다보다가 "공연한 일을 하는구나"며 한 마디 냈을 법한 풍경이다.

아닌 게 아니라 떡갈이든 상수리든 도토리나무 입장에서는 빗질 소리가 달갑지 않을 것이다. 먼저 떨어진 열매를 잎새가 숨기거나 감싸주는 데다 영양분과 거름이 되어 생명을 키우는 역할까지 해줄 텐데 매정하게 빗질해버리면 어떡하나. 나무가 위로 보듯이 자라는 것은 속상해서 눈을 아래로 두지 못하는 이유다. 도심의 나무는 더 비감하다. 열매를 건사할 땅 한 평이 귀하니 눈도 귀도 닫고 지내는 게 속 편하다. 어쩌다 골목이나 뉘 집 뜰에서 느티나무, 단풍나무 어린 싹을 보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기특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내일을 모를 운명이 대부분이다.

나무와 숲이 지구의 공기 주머니임을 생각하고, 나뭇잎 하나의 체온, 나뭇잎에 깃든 아기벌레까지 생각한다면 자연에 최소한으로 간섭하는 게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윤리임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게 지구를 위해서 가장 생산적인 일이라는 역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주의 피곤한 숨소리"를 알아듣고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자연에까지 미치길 소망한다.

물론, 이 시가 자연과의 관계만을 얘기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사물이 자리한 이 지상의 모든 곳은/ 가장 편안한 존재의 침실"이란 말이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 되려면 제 침실만 생각하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존재는 늘 불안하다. 자연도 성깔이 있다. 존재와 자연 사이에 아름다운 하모니가 있다면, "이제껏 허공에 매달려 살다가" 떨어지는 이웃에게 한 평의 뜨락을 흔쾌히 내어주는 마음일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