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나무소녀

톰소여와허크 2017. 2. 3. 07:56

벤 마이켈슨, 『나무소녀』, 양철북, 2006.



   과테말라 내전을 다른 소설을 읽자니, 오래 전 읽은 소설 제목이 생각난다. 베트남 내전과 상흔을 다른 ‘전쟁의 슬픔(바오 닌)’이다. 한국 전쟁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으니 전쟁은 가장 이성적인 존재라는 인간이 가장 이성적이지 않은 행동을 통해 무수한 슬픔을 낳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소설 양식을 빌려 이 슬픔을 기록해 둠으로써 과거에 대한 반성과 함께 평화가 곧 생명이라는 가치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평화로운 인디오 부족에 변화가 생긴 것은 과테말라 정부군과 반군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 입장에서는 인디오가 반군에 협조하는 것이 두려웠다. 누군가 명령을 내리고 450여 개의 마을을 전소하고 수만 명을 학살하는 데까지 이르는 게 내전의 개요라면, 소설은 인디오 소녀의 눈을 통해 이 참상을 고발한다.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구름을 잡을 정도로 나무를 잘 타는 소녀, 그 덕에 군인들의 눈을 피해 목숨을 두어 번 건지기도 했지만 그러는 동안 학교 선생님과 동무들, 마을의 가족과 이웃들이 살육을 당하고 살아남은 어린 동생은 그 충격으로 벙어리가 된다.

피난길에 또 다른 마을의 어른과 노인과 아이와 여자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과정을 나무 위에서 지켜본 소녀는 혼자만 목숨을 구하는 비겁함에 이를 악물고 다시는 나무에 오르지 않겠다고 절규한다. 이 다짐은 피난민 수용소에서 동생과 해후하며 가까스로 풀리는데 그 장면에서나마 희망적이라고 하기엔 이미, 너무 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래, 나무소녀는 아주 특별한 존재야. 그렇지만 무서운 것이 있다고 그걸 피해 달아나면 나무소녀가 될 수 없어. 너를 겁에 질리게 하는 것에 당당히 맞서야 나무소녀가 될 수 있어. 그러려면 먼저 말을 해야 해”

  동생의 말문을 틔워주려는 대화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연 것인데, 소녀와 동생은 고향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나뭇가지 위로 더 높이 오른다. 위에 올라 더 많은 것을 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내려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 마음껏 놀 수 있는 마을이 더 소중해 보인다. 살아남은 사람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는 총을 겨누지 않는…… 평화일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