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불일암 인운 스님에게 / 이달

톰소여와허크 2017. 2. 5. 17:19




불일암 인운 스님에게(佛日庵贈因雲釋) / 이달



寺在白雲中 사재백운중   절이 흰 구름 속에 묻혀 있으나

白雲僧不掃 백운승불소   흰 구름을 중은 쓸지 않네

客來門始開 객래문시개   손님이 와서야 비로소 문을 여니

萬壑松花老 만학송화로   온 산의 송화가 벌써 쇠었네


   * 시에서 인운 스님을 찾아가는 객은 바로 이달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럼 이달은 누군가. 당시(唐詩)에 능해 삼당시인으로 불리는 문사였지만, 어머니가 첩이었기에 벼슬을 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서얼이라는 굴레를 어쩌지 못하고 술로 속을 달래고 방랑으로 화를 누그러뜨리는 세월 중에 허 씨 남매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명문가 자제인 허균과 허난설헌의 글 선생이 되어, 특히나 허균이 조선 최고의 이단아의 길을 가게 되는 폭약 심지를 이달이 허균의 가슴에 심어주었을 것이다.

   허균은 스승 이달을 깊이 사숙했다. ‘손곡산인전’에서 스승이 시속의 예법에 익숙하지 못하여 시류에 따르지 못하는 면도 있었고 그로 인해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적는다. 또 그의 몸이야 곤궁했어도 불후의 명시를 남겼으니 한 때의 부귀로 어떻게 그와 같은 명예를 바꿀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그의 글에 스승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소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의 모델이 이달이라고 꼽는 사람도 있다.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한 이달의 한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였기에 허균 자신은 잘 나가는 집안의 적통임에도 불구하고, 신분 때문에 쓰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루 등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당사자 이달은 들끓는 젊은 시절을 보내고 조금은 담담해진 것 같다. 위 시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마당의 낙엽이든, 흰 구름이든 그냥 두고 본다. 자연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대로 두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대로 시간에 던져두고 마음을 뒤에 두는 자세다. 먼 데서 오는 소식에 잠깐 마음이 놀기도 하겠지만 쉽게 산을 내려올 성싶지는 않다. 시간이 마음의 평화로움을 갖다 준 것인지, 몸의 에너지를 앗아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흰 구름 떠 있는 절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