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끝없는 이야기
미하엘 엔데(허수경 역), 『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 인간 세상과 환상 세계는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 세상이 환상 세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환상 세계의 일이 인간 세상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는 그런 믿음이 이 소설에 있다.
인간 세상의 바스티안은 어머니를 여의고 상심에 빠진 아버지로 인해 일찍 외롭게 된다. 뚱보에다 안짱다리인 그는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한다. 탈출구가 필요해 보이는 바스티안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고서점에서 훔친 책 한 권이다. 학교 수업 대신에 학교 다락에 숨어서 책을 보며 책 속 환상 세계와 연결된 것이다.
어린 여왕이 다스리는 환상 세계는 병든 여왕으로 인해 점점 무(無)로 바뀌어 가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스티안 또래의 아트레유가 모험에 나선다. 아트레유의 임무는 여왕의 이름을 지어 줄, 그렇게 함으로써 환상 세계를 구할 구원자를 찾는 것이다. 이상한 숲과 이상한 늪과 이상한 산을 지나며 행운의 용의 도움을 받으며 마침내 마법의 문에 이르는 여정 속에 밝혀진 구원자의 정체는 바스티안이다.
바스티안은 남들보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뛰어났으니 여왕의 새로운 이름을 짓는 적임자다. 제목이 끝없는 이야기인 만큼 곧 끝날 것 같은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여왕의 선물로 소원을 하나 둘 이뤄나가는 바스티안은 조금씩 더 강하고 더 위대해지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 친구 아트레유의 가슴에 칼자국을 선사하기도 한다. 또 다시 혼자 외롭게 된 바스티안이 소원했던 것은 특별할 것 없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원이 되어 공동체에 참여하고 싶은 거였지만, 그게 전부가 아님을 깨치면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때의 깨달음은 아주 인상적이어서 몇 번이나 읽게 된다. 바스티안이 바스티안에게, 저자가 독자에게 아니면, 저자가 자기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을 거다.
“바스티안은 개인이고 싶었고 다른 모두와 똑같은 한 명이 아니라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바로 자기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싶었다. 위스칼나리(함께하는 이들)의 공동체에는 조화는 있었지만 사랑은 없었다.
바스티안은 가장 위대한 자, 가장 강한 자, 가장 똑똑한 자이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은 지나갔다. 원래 모습으로 사랑받기를 바랐다. 착하든 못됐든, 아름답든 추하든, 똑똑하든 멍청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모든 약점도 함께. 아니면 바로 그 약점 때문에 사랑받기를.”
뚱보에 안짱다리에 운동신경이 떨어져도 이름 짓기를 잘하는 나 자체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바스티안이 스스로 아는 게 바스티안을 전과 다른 아이로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여왕에게서 아트레유에게로 또 바스티안에게로 넘겨진 여왕의 신표, 아우린에는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원하는 것’이 뭔지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락방에서 책을 읽으며 환상 세계에 다녀오면 좋겠다. 그런 다음, ‘나 자체로 사랑받기를’, 이렇게 따라 외어도 손해 볼 일은 전혀 없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