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바깥에 사는 사람 / 김소연

톰소여와허크 2017. 3. 17. 23:38


바깥에 사는 사람 / 김소연

 

 

버스에 가장 오래 앉은 사람은

가장 바깥에 산다 그곳은 춥다

 

버스에 외투를 벗어두고 종점에서 내린 적이 있다

다른 나라 더운 도시의 공항이었다

맨발로 비행기에 올라 더 멀리 나는 갔었다

 

옆자리에는

같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의 이어폰에서 찌걱찌걱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

같은 이별을 경험한 사람임을 알았다

 

그때 그 버스에 가장 오래 앉은 한 사람은

내가 벗어둔 외투를 챙겨 입고

혹독한 겨울로 무사히 들어갔을까?

 

버스 종점에서만큼은

커피 자판기가 달빛보다 더 환하면 좋겠다

동전을 넣고 손을 넣었을 때

산 짐승의 배 속에서 꺼낸 심장처럼

뜨끈한 것이 손에 잡히면 좋겠다

 

어떤 나라에서는 발이 시리지 않다

어떤 나라에서는 목적 없이 버스를 탄다

그러나 어떤 나라에서는 한없이 걸어야 한다

 

피로는 크나큰 피로로만 해결할 수 있다

사랑이 특히 그러했다 그래서

 

바깥에 사는 사람은

갈 수 있는 한 더 먼 곳으로 가려 한다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사, 2013.

 


  *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허수경),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정호승)는 시구를 기억한다. 그늘과 슬픔과 바닥으로 가서, 그 그늘을 그 슬픔을 그 바닥을 깊이 앓은 사람만이 그걸 자양분으로 해서 든든한 연대, 성숙한 사랑을 배울 거라는 생각도 한다.

  “버스에 가장 오래 앉은 사람이거나 바깥에 사는 사람은 그늘과 슬픔에 익숙한 사람이다. 특히나 이별을 경험한 일로 인해 그늘과 슬픔의 크기가 무한정 늘어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중에 어떤 위로가 있어 슬픔을 덜어 가기도 할 것이고 일정 시간이 지나 슬픔이 옅어지기도 할 것이다. 악착같이 떨어지지 않는 슬픔 하나 정도는 한없이 걷는 것으로 상쇄시키는 방법도 있겠구나 싶다. “피로는 크나큰 피로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시인의 말에 수긍이 간다. 사랑과 이별 그로 인한 고통과 피로를 또한 크나큰 피로로 해결하는 게 무지가 될지 영약이 될지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바깥에 사는 사람은 이미 그 길에 발을 들여놓고 어딘가를 걷고 있는 거다.

  바깥을 사는 사람은 안에 들어 있는 사람보다 전체를 잘 볼 수 있고 그만큼 들려줄 이야기도 많겠다. 또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바깥을 걷다가도 안으로 들어올 일이 생기고, 안에 있다가도 밖으로 넘어갈 일이 생기겠다. 그늘을, 슬픔을, 바깥을 자연스레 껴안는 마음이라면 그늘이 그늘로만 머물지 않고 슬픔이 슬픔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종점에 놓인 누군가의 외투도 껴입으면서 말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