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 / 백미혜
백미혜,<선-삶의 비용>전에서,(대구미술관 2016)
시 쓰기 / 백미혜
모르겠어요. 돌아오는 길
아마 좌측 길이 아니고
우측이었을 거예요
신호등을 건너지 말고
곧장 돌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길, 매일 지나다녀서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암청색 어둠이 좀 깔렸을 뿐인데
도시를 빠져나가 잠시 산길을
달리다 왔을 뿐인데
나는 길을 찾지만
당신은 길을 지우십니다
내가 찾는 길은 늘
돌아오는 길입니다
당신이 지우시는 길도 늘
돌아오는 길입니다
내가 찾고 당신이 지우시니
만약 우리 사랑
안쪽으로만 향해 있다면
당신과 나 사이
얼마나 많은 생채기 만들게 될까요.
모르겠어요. 돌아오는 길
아마 그 은행 앞이 아니고
학교였는지도.
지척에 있는 당신 뵙기가
어쩜 이리 어렵지요?
- 『에로스의 반지』,민음사,1995.
* 화가이기도 한 시인이 시에 대한 고민을 제목으로 가져왔지만 제목을 그림 그리기라 해도 무방하다. 그 어떤 것이든 자신이 사랑하고 몰입하고 싶은 대상을 제목에다 갖다 놓으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가 아니라 제법 제자리를 차고앉은 느낌이다.
매슬로우는 가장 높은 차원의 욕구로 심미적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를 꼽은 바 있다. 좋은 시를 쓰고 싶은 욕구, 기막힌 그림과 조각을 남기고 싶은 욕구, 멋진 악보와 노래를 만들거나 연주하고 싶은 욕구 등 각각의 분야에서 몰입과 성취를 얻으려는 노력이 있을 텐데, 시인은 이를 길 찾기 과정으로 본다.
길은 “당신과 나 사이”를 매개하고 있지만, 동반자적 속성보다는 불편한 관계가 우선 감지된다. ‘나’는 길을 찾고 ‘당신’은 길을 지우는 중이기 때문이다. ‘나’를 자아실현을 꿈꾸는 시인 혹은 예술가로 볼 것 같으면 ‘당신’은 그렇게 해서 완성된 하나의 세계 곧 예술가의 역작일 테다. 궁극의 지경인 이 세계가 호락호락할 리 없으니 “당신과 나 사이”에 수많은 땀과 눈물이, 고민과 방황이 있을 줄 안다. 대개 예술이란 것도 양자 사이에 밀고 당기며 길항하는 과정의 산물일 것이고.
당신으로 인해 길은 가려져 있고 눈앞에서 지워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길로 나서는 ‘나’가 있는 한 예술은 말짱 저편은 아니다. 길을 잃어버리고 생채기를 내는 것도 당신이란 세계 안에서 그저 그렇고 그런,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그도 없으면 당신도 없는 거다. (이동훈)
백미혜,<선-삶의 비용>전에서,(대구미술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