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운명의 캉캉
나혜석, 무희(1927-28)
박정윤, 『운명의 캉캉』, 푸른역사, 2016.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소설에 인용되기도 했던 ‘인형의 가’ 후렴 부분이다. 아내로서 또 어머니로서의 의무만 충실히 수행해 주기를 바라는 남자 혹은 사회의 시선을 깨고 “저 자신에 대한 의무”(입센, ‘인형의 집’)를 말하며 집을 나서는 노라는 나혜석의 운명까지도 바꾸어 버렸다.
나혜석은 여성으로 그림 전시회를 가진 최초의 화가이기도 하고, 이혼 후 ‘이혼 고백서’를 발표하여 여자의 정조만 문제 삼는 사회 풍토를 비판했다. 이혼 원인을 제공했던 최린을 정조 유린 당사자로 고소하기도 하며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지만 우호적이지 않은 평판에 시달리며 쓸쓸한 말년을 보낸 걸로 알려져 있다.
소설에서는 나혜석의 불행을 더 깊게 하는 엘리제 마담과 마담의 딸인 초이, 나혜석을 동경했던 독고휘열과 그의 아들인 독고완을 등장시키는 데 이는 저자가 선택한 허구적 캐릭터다. 초이와 독고완이 나혜석의 죽음을 파헤치는,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서사를 취한 데다 여기에 현재의 인물로 등장하는 ‘나’ 역시 초이와 독고완의 원고를 통해서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구조를 한 꺼풀 덧대 놓았기에 나혜석에게만 집중하려는 힘은 분산된다. 거꾸로 밝혀진 그 이상의 전기를 나혜석에게 씌우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겠다.
한용운을 찾아간 날, “개성과 생각이 분명하다면 그걸 지키는 것이 인간의 도리”며, 그렇게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두 사람이 주고받는다. 인형이기를 거부하며, 내가 나일 수 있는 개성과 생각을 갖는 것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길이고 동시에 예술의 뿌리임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