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천 / 김동원
오십천 / 김동원
어릴 적 난 홀어머니와 함께, 강가 백로 외발로 선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 꽃구경을 갔다 봄 버들 아래 은어 떼 흰 배를 뒤집고, 물결이 흔들려 뒤척이면 붉은 꽃 개울이 생기던, 그 화사한 복사꽃을 처음 보았다 젊은 내 어머니처럼 향기도 곱던 그 복사꽃이 어찌나 좋던지, 그만 깜박 홀려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갓 서른이 넘은 어머닌 울고 계셨다 내 작은 손을 꼭 쥔 채, 부르르 부르르 떨고 계셨다 그 한낮의 막막한 꽃빚의 어지러움, 난 그 후로 꽃을 만지면 손에 확 불길이 붙는 착각이 왔다
어느새 몸은 바뀌고, 그 옛날 쪽빛 하늘 위엔 흰구름 덩이만 서서, 과수원 언덕을 내려다본다 새로 벙근 꽃가지 사이로 한껏 신나 뛰어다니는 저 애들과 아내를, 마치 꿈꾸듯 내려다본다
- 『구멍』,그루,2002.
* 동해로 흘러드는 오십천은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위쪽의 오십천은 태백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삼척항으로 빠져나간다.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싣고 간다며 이 아름다운 곳을 서울에 있는 이에게 보이고 싶다고 ‘관동별곡’에서 정철이 노래했던 곳이다.
아래의 오십천은 청송 주왕산에서 발원하여 영덕 강구항으로 빠져나간다. 은어 떼와 복사꽃빛으로 묘사된 이곳의 아름다움도 다른 데 밑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영덕이 고향인 시인의 오십천이기도 하다. 이 두 오십천 사이에 울진 통고산에서 발원하여 망양정 앞바다로 빠져나가는 왕피천이 자리하고 있다.
오십천이란 이름은 오십 번 꺾여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는데, 헤아려 보지 않아도 오십 번을 오십 번 더 꺾였을 성싶다. 다른 하나의 설은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 흐르는 물이라 해서 새내라고 해야 할 것을 싯내, 쉰내로 부르다가 쉰을 오십으로 그만 바꾸어 인식했다는 거다.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지만 두 강의 길이가 마침 오십 킬로미터에서 조금 빠지니 대충, 길이를 의미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시인의 오십천은 내게도 아주 익숙한 시다. 집 앞 버스정류장 간판에 떡하니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나이에 대구로 유학 오면서 어머니와 떨어져 몹시 그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 어머니도 서른 즈음에 돌아가셨고 자신도 그 즈음부터 몸이 아팠다고 시 배경에 대해서 적은 바 있다.
이 시의 앞 이야기는 홀어머니와의 나들이 경험이고 뒷이야기는 새로 가족을 이루고 나선 후에 나들이며 시작 배경의 단초가 된다. 시인은 복사꽃에 흠뻑 취해 있다가 복사꽃처럼 곱던 젊은 날의 어머니와 해후하는 것일 테다. 시인은 지난 날 자신이 복사꽃에 홀렸다고 했지만 청상의 어머니 역시 꽃에 마음이 흔들렸다가 가까스로 아들을 찾았을 것이다. 시인의 기억 속에 “어머닌 울고 계셨다 내 작은 손을 꼭 쥔 채, 부르르 부르르 떨고 계셨다”고 했으니 모자간에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장면이겠다.
그때의 아들은 장성하여 “뛰어다니는 저 애들과 아내”를 꿈꾸듯 내려다보니 옛적의 어머니가 내려다보는 이쪽 풍경과 시선이 겹친다. 사랑하는 사랑을 미덥게 또 걱정스레 바라보는 눈빛일 것이다.
이 시를 쓸 때 서른인 아들은 지금, 오십이 훨씬 지났겠지만 어머니는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 생시로도 오고 꽃으로도 오고 꿈으로도 오고 구름으로도 온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울 때면, “손에 확 불길이 붙는 착각”으로도 온다.
오십천이 단순한 길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바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철없을 때 오십 년, 철들고 다시 오십 년 내내 이어지는 부모 자식 간의 정이거니 싶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