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비 오는 날 / 김수열

톰소여와허크 2017. 5. 14. 15:25



비 오는 날 / 김수열



수학 시험 볼 땐데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아, 짱나


배 둘레만 알면 됐지

도형의 둘레랑 나랑

뭔 상관?


창밖엔 운수 좋은 날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틀렸다, 틀렸다 하면서

사선으로 내리는 거예요

아, 졸라


그런데요, 운동장 물웅덩이 보니까

맞았다, 맞았다 하면서

동그라미를 그리는 게 아니겠어요?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

다 동그라미예요


선생님,

내 답안지가요

물웅덩이였음 졸라 좋겠어요

아, 진짜


- 『생각을 훔치다』,삶이보이는창,2009.



*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는 기도문이 생각나서 찾아봤더니 test가 아니라 temptation(유혹)이다. 그럼에도 ‘시험’으로 처음 번역한 사람은 테스트의 의미도 다분히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다.

시험에 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학생도 마찬가지다. 좋은 성적을 내서 보람을 얻는 소수의 학생도, 노력만큼 결실하지 못하는 다수의 학생도 애쓰고 전력하느라 지치기는 매일반이겠다. 이전의 공부가 기초가 되어서 다음 공부를 해나가는 수학의 경우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포기를 선택당하는 면도 있다. “아, 짱나”라는 말이 안 나오면 이상하다.

가고자 하는 자가 한쪽으로 몰리면 평가가 불가피한 면이 있겠지만, 그 가고자 하는 길과 그다지 연관도 없는 공부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 그 길이 정말 가치가 있어 줄을 세우는 게 마땅한 일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언제든 있어야 할 줄 안다.

수학 시험에 임한 학생의 태도로 보아, 곧 학생이 받아 쥘 채점표는 창밖의 비처럼 사선으로 쭉쭉 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 졸라”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선 대신에 물웅덩이의 동그라미를 생각하는 것은 학생의 꿈이지만 그 꿈을 지지하는 선생의 시선이기도 하다. 단지, 정해진 풀이를 적지 못했을 뿐, 동그라미를 원하는 마음에 사선을 그어선 곤란한 일이다. 오히려 빗방울마다 연신 동그라미를 만들어낼 것을 바라는 그 평등한 마음에 동그라미를 크게 쳐줄 만한 것이다.

물웅덩이가 빗금을 동그라미가 되게끔 했던 것처럼 시험과 평가에도, 시험이 시험으로 끝나지 않고 저마다 동그라미가 되게 하는 획기적 전환 장치가 생기면 좋겠다. 소설과 다르게 운수 나빴던 날이 ‘운수 좋은 날’이 되게 하는, 그런 반전이면 “아, 진짜” 좋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