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 송경동

톰소여와허크 2017. 6. 8. 23:11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최종범 열사의 딸 ‘별’이를 생각하며 / 송경동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직통으로 가는 길도 있나요

저 담쟁이넝쿨 붉은 성당으로 가면 표를 얻을 수 있나요

성처럼 웅장한 저 교회로 가서 기다리면 되나요


천만 비정규직 가족도 정규로 갈 수 있나요

공장에서 쫓겨난 해고자도 출입증 없이 갈 수 있나요

시시때때로 끌려가는 저 철거민도 노점상도

이주노동자도 차별 없이 온전히 들어갈 수 있나요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천국은 좋은 곳이라는데

거기도 부동산 투기를 하나요

그렇다면 우리 같은 서민들은 못 가겠군요


그 길에도 차벽이 가로막혀 있나요

그 길에도 공권력이 지키고 서 있나요

그 길에도 용역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나요


도대체 목매달지 않고

기름 끼얹지 않고 연탄불 지피지 않고

망루와 철탑에 오르지 않고 뛰어내리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그래서 말인데요

다시 돌멩이를 들지 않고

다시 스크럼을 짜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2016.


* “삼성서비스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태일 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저는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2013년 10월31일,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일하던 최종범 씨가 연탄불을 피우고 자살했다. 딸 별이의 돌잔치를 며칠 앞둔 때였다. 초일류기업이라는 삼성은 지금도 전국 160여 개 서비스센터 수리기사 만여 명을 모두 재재하청의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시인이 덧붙인 글)




- 김종삼 시인은 「북 치는 소년」에서 가난한 아이에게 온 크리스마스카드를 “내용 없는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바 있다. 전쟁 이후의 황폐하고 가난했던 시절의 체험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 무렵 서구에서 유입된 크리스마스카드란 게 암만 아름답게 반짝여도, 실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서민들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시 전편에 낭만적 느낌이 없지 않은데, 송경동 시인이 보내는 2013년 혹은 그 이전 그 이후의 크리스마스는 낭만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성싶다.

크리스마스카드 대신에 “한날한시에 와 있다 기네스협회에라도 보낼까”라며 「여섯 통의 소환장」을 받기도 한 시인은 그해 크리스마스에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최종범 열사”의 장례식에 있었을 것이고, 그날 저녁은 별이와 유가족을 위해 시간을 보내며 지금의 시를 남겼을 것이다.

천만 비정규직 가족을 대신해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거듭 묻는 시인의 육성에서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중)는 구절이 저절로 생각난다. 그 난쏘공이 2017년 4월쯤 300쇄를 찍었다고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1996년 100쇄를 찍었을 때, 조세희 작가는 “계엄령과 긴급조치의 시대였던 1970년대에 난쏘공을 쓴 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 삶에 경고팻말이라도 세워야겠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라고 했고, 2005년 200쇄를 찍었을 때는 “저는 850만 비정규직 근로자, 350만 농민들의 문제가 발목을 잡아 해외여행도 않고, 골프도 치지 않으며, 부자동네에도 살지 못합니다. 그들 1천200만명은 이 땅에서 가장 돈이 필요한 가장들이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최근 시위사태는 이들이 희망을 잃고 얼마나 슬프게 사는지 보여줍니다. 세상은 30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라고 했다.

300쇄엔 따로 인터뷰를 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난쟁이 가족이 겪었던 일이 지금에도 똑같이 이어지는 일에 말문을 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2011년 초,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저항해 김진숙 노동자가 309일 고공 농성을 벌였고, 2014년 11월에는 그간 28명의 희생자를 양산한 쌍용자동차 문제에 대해서, 해고 무효를 판정한 고등법원의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는 일도 있었다. 이 일로 이창근 노동자는 101일 고공 농성을 벌인 바 있다.

시인의 말처럼, “목매달지 않고”, “연탄불 지피지 않고”, “망루와 철탑에 오르지 않고 뛰어내리지 않고” 그렇게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몇 번 물어도 시원한 답은 없다. 경쟁 유도와 쉬운 해고로 자본의 배를 불리려는 시도와 기득권으로서의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비정규직과 나누고 싶지 않은 이기심이 한데 뭉쳐 벽처럼 있다면 거기에 맞서 “돌멩이를 들지 않고”, “스크럼을 짜지 않고” 어떻게 벽을 뚫고 넘느냐는 고민이 절실하다. 그걸 몸으로 깨우치고 행동하려는 시인에게 미안함과 연민과 신뢰의 마음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오는 크리스마스엔 부자는 조금 가난해지고, 가난한 자는 조금 여유가 생겨서 어느 누구도 공장 굴뚝에 올라갈 일이 없기를 꿈꾼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