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글> 카미유 클로델
안 리비에르, 브뤼노 고디숑 엮음(김이선 옮김),『카미유 클로델』,마음산책, 2010.
티비로 방영되기도 했던 영화, <카미유 클로델>(부르노 누이땅, 1988)에서 카미유의 열정과 히스테릭한 행동 그리고 파국에 이르는 장면을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있었던 만큼 젊은 날의 카미유가 표지 장정인 책을 만났을 때 반가웠다. 카미유가 주고받은 편지를 연대기별로 모아두었기에 카미유를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다.
로댕의 조수가 되고 로댕의 사랑을 받은 것이 카미유에게 평생의 굴레가 될 줄 스무 살의 그녀는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 무렵 로댕의 편지는 카미유에 대한 애정으로 펄펄 끓고 있다.
“너를 보지 않고선 하루도 지낼 수 없다. 너를 보지 못하면 끔찍한 광기가 시작된다. 끝났다. 나는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는다. 너는 사악한 신, 그러나 나는 열렬히 너를 사랑한다”(1886년 로댕)
“그대의 고통은 나의 불행, 그것을 알아주시오”(1895년 로댕)
하지만 로댕과의 관계는 점점 악화일로로 빠지게 된다. 자신의 작품 <샤쿤탈라>를 미술관에 두는 것을 두고 논쟁거리가 되었을 때 제프루아가 우호적인 비평을 쓰게 되자, 카미유는 제프루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진정한 친구들로부터의 존중 어린 평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보상입니다”(1895년)며 고마움을 표했다. 카미유는 자신의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기를 원했고 이미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로댕의 제자로 또 그 아류로 평가받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로댕의 호의는 이어지지만, 카미유는 그의 방문을 피하며, “제가 끔찍하리만큼 열중하고 있는 제 작품들이 성공이 그의 조언과 영감 때문이라는 소문을 한쪽에서 믿게 만들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며 자신이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비친다.
카미유에게 로댕, 로댕에게 카미유는 연애 감정의 상대이기도 하겠지만 예술 면에서만 보자면 서로 영감을 주며 그 자극으로 둘 다 상승하는 훌륭한 동료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로댕의 <발자크> 상에 대해서, 카미유는 “아주 훌륭하고 아주 아름다우며, 같은 주제의 초벌 작품들 가운데 단연 최고라 생각해요. 특히 옷 주름의 단순미와 대조를 이루며 머리 부분에 강조된 효과는 대단히 독창적이고 인상적이었고요. 또한 발자크가 태평한 영혼의 소유자임을 잘 표현해주는 헐렁하게 물결치는 소매에 대한 아이디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1897년)라고 평을 했고, 여기에 로댕은 카미유가 평판에 대해 너그러워지기를 바라며 “그대가 내 <발자크>를 평가해준 그 관대함이 나에게 얼마간 확신을 주었다오. 내가 죽을 때까지 내쳐진 그 검은 유기 안에서 나는 그대의 조언이 필요했던 것이므로”라는 답신을 보낸다.
그렇지만 카미유는 로댕과의 결별을 기정사실화하게 되고, 후원자로부터 멀어져서 작업을 위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고흐가 동생에게 종이 값과 물감 값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처럼 카미유도 편지 곳곳에 지원비와 작품 값에 대한 요청을 지긋지긋하리 만치 요구하게 된다.
이후 카미유의 이상 행동과 정신병원 행 그것도 30년 가까이 바깥세계를 보지 못한 비극은 로댕 입장에서 보자면, 카미유의 지나친 의심과 ‘관대함’의 부족으로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것이 되겠지만, 카미유의 생각은 다르다. 자신의 천재를 시기한 로댕과 그의 동료들이 자신을 모략해서 저를 정신병원으로 보낸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제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훔치고 제가 만든 초벌 작품들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더니, 제가 격분해 저항하자, 그는 힘으로 저를 짓누르기 위해 강구한 곤궁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1907년)라며 로댕의 부당한 처사를 언급했지만 어머니와 동생 폴 클로델도 자기편이 아니었다. 어머니 생각은 “그래도 변명을 해보자면, 자기를 방어할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심하게 치이다 보니, 성격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거겠지”하고 애써 이해하는 시늉을 취했지만 편지 왕래만 있었을 뿐 한번도 딸에게 면회를 가지 않았다.
카미유는 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자신의 천재성을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희생된 것임을 말하며, “정신병원이라니!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지! 나를 자기들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착취요, 피 흘릴 때까지 수고하게 만들려는 예술가에 대한 말살 계획이다”(1930년)라고 했다. 진정과 오해와 거짓 사이 모든 게 불분명해도 카미유의 좌절만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녀는 끝없이 호소하면서도 순진할 만큼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고, 1943년 9월 폴의 방문을 끝으로 한 달 후 사망한다.
카미유의 석고상 <애원하는 여인>(1906년경)을 보며, 그녀의 애원에 무심했던 한 시대를 돌아보게 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