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나무 / 전흥규
늙은 소나무 / 전흥규
늦여름비가 벌거숭이로 달려와서는
마른 가슴 뒤척이는 밤 숲으로 파고든다
이 비를 맞이하여 말없이 서 있는 너의
살 깊은 주름에 더듬거리는 손전등을 비추자
묵은 흙먼지가 와르르 쏟아진다
다 젖어도 차마 적실 수 없는 화인처럼
들어앉힌 제 그늘까지 놀래서는
숨겨지는 것마저 너를 닮은 잔상으로 진다
한바탕 굿판이 돌 듯 빗줄기들이 뛰어다니면
잎 큰 이웃나무들이 풍문을 돌려도
너는 비바람소리까지 죽여 받아내며
제 바늘 선 살 속으로 신음할 뿐,
경박하게 소리 내거나 굽혀 흔들지 않는다
올해는 너의 노파심에 솔방울이 많다
저 속을 틀고 나간 것들이 소란의 끝에서 영글어
다시 너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마는
햇살 한줌 더 받으려고 들어 올린 허공 속으로
멀리 날아가라고 벼른 날개를 달아줘도
제대로 날아가지 못한 것들은
빗물에 휩쓸려가 산 아래 용소를 돌거나
너의 품속에서 어두운 발등을 찍고 있겠지
이 비가 가고 나면 살 주름은 더 깊어져
한 움큼 앉은 흙먼지 제 눈물로 씻어내며
적실 수 없는 것들만 안고 서서는
서툰 날궂이에 가끔 너를 닮은 것들이
다시 마른 것들의 초록향이 되기도 하고
-『기다리는 것은 가면서 온다』, 말벗, 2017.
* 야간 산행 중에 소나기를 만났을까. 아마도, 늙은 소나무 아래 비를 피해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잎 큰 이웃나무”는 바람에 부대끼며 빗소리를 다 받아내느라고 소란하기도 할 것을, 바늘잎 소나무는 바람과 맞서지 않고 소리도 죽여 받아낼 줄 안다. 시인은 이를 “경박하게 소리 내거나 굽혀 흔들지 않는” 삶의 자세로 좋게 이해한다.
흙먼지를 씻겨 내리고, 있는 그대로의 살 주름을 드러내기 시작한 늙은 소나무를 보다가 나무 가지가지에 달린 솔방울에 눈길이 닿으면서 시인은 늙은 소나무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읽는 데까지 나아간다.
소나무가 씨앗을 방울에 두는 이유는 자신의 그늘에 머물지 않도록 멀리 굴러가서 스스로 서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녀석은 곁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어두운 발등을 찍”게 되고, 또 어떤 녀석은 하필이면 용소에 빠져 발아의 기회를 놓치기도 하니 부모의 살 주름만 더 깊어지겠다. 물론 개중에 떨꺼둥이 하나는 벼랑에 붙어서도 바람 불 때마다 초록향으로 인사를 차리기도 할 것이다.
“날궂이”란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날씨가 궂은 때에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늙은 소나무 아래 비를 피한 시인이 시상을 애써 갈무리하는 것도 세상살이 바쁜 사람들에겐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덕에 자신의 삶을, 그 삶을 있게 한 배후를 온전히 생각해 본다면 그것도 꽤 요긴한 일일 성싶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