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폐허를 보다

톰소여와허크 2017. 7. 23. 09:22

이인휘, 『폐허를 보다』, (주)실천문학, 2016.




- 몇 편의 중단편으로 엮인 이 책은 노동자이기도 한 작가가 마주한 폐허에 대한 기록이다. 소설적 상상과 윤색이 있다 하더라도 사실성이 도드라진 작품이다.

작가가 말하는 폐허는 우선, 노동자의 노동이 일상으로 행해지는 생산 현장의 악조건을 생각하게 한다. 근로 시간은 늘이고 싶어 하고, 임금은 최저 임금만 주거나 그도 안 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데다 인격적인 모독도 서슴지 않는 현장이 곧 폐허다. “왜 공장은 하나같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지 화가 났습니다. 오만 가지 잡다한 곳까지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몸부림을 칩니다”(‘공장의 불빛’ 중)라는 말처럼 자본과 이윤을 제일 윗길로 치는 사람들에겐 다른 모든 사항이 부수적인 문제일 뿐이다. CCTV로 노동을 감시하고 싶어 하고, 희석제 없이 본드 물을 밖으로 내보내고 싶어 하고, 유동 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요령부득의 사고를 지닌 사람이 자본가 또는 업주라는 이유로 결정권을 가져서다.

또 다른 폐허는 이런 자본가의 횡포와 그들을 편들어 주는 지배 권력의 인식과 행위다. 이들은 자신에 맞서려는 시도에 대해서 그것을 억압하는 구조를 강화한다. 근로기준법 준수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던 박영진은 공권력 투입으로 분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고, 노동운동하는 친구를 숨겨준 죄로 윤세진은 국가 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지각을 놓아버리고 만다. 여기에 충격이 더한 강이산(소설에 소개된 강이산의 시 몇 편은 박영근 시인의 작품임)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핫도그 공장에서 사장의 거듭된 욕설과 인격 무시에 대해 최소한의 사과를 요구하던 여성 노동자에게 사장이 내민 건 여차하면 퇴사시키겠다는 협박조로 항복을 종용하는 각서 한 장이었다.

가장 아픈 폐허의 모습은 노동자 간의 외면과 다툼일 것이다. 자본가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고 해도 내부의 이견으로 연대가 무너지는 건 당사자에겐 견디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강 집사가 부당한 대우와 해고에 절망해 자살을 선태하기까지 그의 동료가 되어준 사람은 없었다. 해민과 칠성 등이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사수대를 조직하여 끝까지 파업 투쟁을 벌이려는 것을 막은 것은 사측이 아니라 노조 위원장이었고 해고자 명단에 제일 강하게 투쟁했던 사람과 제일 약한 비정규직들이 올랐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집이야. 그 집에서 함께 권리를 찾고 서로의 존재를 찾아가는 것이지”(‘폐허를 보다’ 중)라고 늘 생각하던 해민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결단이었다.

작가는 다른 어느 글에서 새벽 술 전화로 유명한 박영근 시인에게 시달리다가 그만 화를 낸 기억이 있다고 했다. 중편 ‘시인, 강이산’은 고 박영근 시인에게 보낸 위로와 화해의 손길 같은 느낌도 있다. 소설에 인용되기도 했던 「물의 자리」를 옮기며, ‘꽃의 뿌리’와 ‘폐허’ 사이를 헤매 다녔을 두 사내의 노동과 여정이 수면에 잠깐 반짝이는 느낌을 갖는다. 폐허도 폐허를 깊이 앓고 새로 인식하는 순간, 꽃 한 송이 피워 내는 바탕이 되기도 할 것이다.



물 위로 꽃 한 송이 피어난다

나 오래 물의 자리에 내려앉고 싶었다

더 깊이 가라앉아

꽃의 뿌리에 닿도록

아픈 몸이여, 흘러라

나 있던 본디 자리로



- 「물의 자리」전문, 『저 꽃이 불편하다』,창비, 2002.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