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먼 곳 / 정일관

톰소여와허크 2017. 7. 25. 10:28




먼 곳 / 정일관

 

 

핸드폰이나 티브이를 볼 때

자주 먼 곳을 바라보라고 한다.

눈이 나빠지지 않으려면

가까운, 작은, 세밀한, 손바닥만 한

이 지독한 근접을 벗어나

멀리 먼 곳을 보라고 권유한다.

이 의학적 권유는 삶의 지침.

먼 곳 너머 그 너머에는

산등성이가 굽이지고

하늘 구름이 흐르고

나무와 숲의 언저리가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들판의 끝으로 가자.

까마득히 새들은 날아가는데

가닿을 수 없는 곳으로 눈을 두어야

조리개가 균형을 잡는다는 것.

사람도 사람의 먼 곳을 봐야겠지.

가까운 것만 보면 보이지 않아

눈앞에 가려져서 그저 놓치고 사는

그 먼 곳을 보아야 제대로 보이지.

, 그대의 먼 곳

멀어서 가물거리는 희미한 빛이지만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 사람의 빛.

 

- 너를 놓치다, 푸른사상사, 2017.

 

 

  * 가까이 보면 더 자세히 볼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가까이 보고 가까이 들은 것이 자기 확신을 주어 주변에 대한 판단이나 대응이 직선적이 되기 싶다. “이 지독한 근접이란 말로 미루어 보아, 시인은 이런 태도가 마뜩잖은 것이다. 오히려 먼 곳, “가닿을 수 없는 곳으로 눈을 두어야균형을 잃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단다.

사물에 대한 이해도 그러하겠지만 사람 사이 관계의 문제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여유 속에 사람의 먼 곳까지 보아야 한단다.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 사람의 빛을 두고 당장의 자기 시각에 갇혀 잘못 읽고 부당하게 대하는 경우가 이전에 왜 없었겠는가마는 지금부터라도 먼 곳을 보는 시력을 키우자는 시인의 전언이다.

가까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도 눈을 바로 뜨고 할 말은 해야겠지만, 잠시 먼 데 눈을 두고 문제되는 말이나 행동의 곡절을 생각해 보고, 그 이면을 헤아려주는 태도는 퍽 요긴해 보인다. 물론, “그대의 먼 곳을 짚기는커녕 나 자신의 변화하는 마음도 알 수 없다는, 내 안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마음의 지향만큼은 시인의 권유를 받아들이고 싶은 거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