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국을 끓이는 동안 / 김선향
곰국을 끓이는 동안 / 김선향
석양은 쪽창문 틈새로 부엌을
자꾸 기웃거리고
엄마, 저 솥 안에 정말 곰이 들어 있어요? 네?
까르륵-
남편은 틈만 나면 전화해
지금 어디야?
눈이 반쯤 감긴 시어머닌 현관문을 지키고
참을성 없는 애인은 러브호텔을 떠나고
몇 시간째야 도대체
이렇게 지키고 서 있는 게
나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끓어오르는 곰국을 뒤집어엎고
애인의 발목을 붙잡으러 뛰쳐나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이섀도우와 땀은 범벅이 되고
오밤중에 되어서야 졸린 눈을 끔벅이며 솥뚜껑을 열어 보니
곰국은 한 국자도 남아 있지 않고
(심지어 말끔한 밑바닥은 송곳니처럼 번쩍거리기까지 하고)
- 『여자의 정면』, 실천문학사, 2016.
* "뼛속까지 갉아먹고도 모자라/ 한 방울 수액까지 짜내 목 축이며 살아왔구나/ 희멀건 국물,/ 엄마의 뿌연 눈물이었구나"(손세실리아, ‘곰국 끓이던 날’ 부분)를 연상케 하는 시지만 시 내용이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손세실리아 시인의 곰국은 어머니의 희생을 진하게 우려낸 것이지만, 김선향 시인의 곰국은 “저 솥 안”에 든 미련 곰이 아내이자 며느리며 어머니기도 한 자기 자신임을 짐작하게 한다.
러브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애인이 남편을 지칭하는 것으로 건전하게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굳이, 시인은 남편 대신 애인이란 단어를 이용하면서 불륜의 느낌을 자아낸다. 아슬한 가계의 모습을 연상할 즈음 시어머니가 현관에서 지키고자 했던 게 며느리인지(혹은 아들인지) 가정의 불안한 평화인지 계산해 보게 되는 것도 시의 묘미를 더한다.
어느 쪽 해석이든 곰국은 상대에 대한 희생과 거리가 멀다. 그럴 여유도 그럴 마음도 없는 데 정성을 강요당하거나 자기 시간을 폭폭 쓰라고 하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 냄비 밑바닥이 졸아서 송곳니를 드러낸 것이 이런 현실에 대한 고발로도 읽히지만, 개인적인 억울이나 화의 투영만이 아닌 파편화된 관계와 풍경 전체에 대한 풍자 의미도 있을 것이다.
‘곰국 끓이던 날’과 ‘곰국을 끓이는 동안’ 무엇이 달라졌을까. 손세실리아 시인이 사랑의 지극함과 함께 다른 누군가를 위한 희생을 말했다면, 김선향 시인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둘 수 없는 변해 가는 가정의 모습과 자기 욕망에 충실하려는 개인의 모습을 잘도 그려냈다.
개인적으론 곰국과 상극이 되어버렸다. 한때 사랑했을지 모르겠지만 통풍을 앓고부터는 깊이 우려낸 것에도 경계하는 마음이 생겼으니 사는 일이 다 그런가 싶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