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러스터 워터 / 강동수
밸러스터 워터 / 강동수
이국의 이름을 달고 부두에 정박한 배 한척
몸속에 가득한 것을 토해내고 있다
천천히 부피를 늘리며 부풀어 오르는 바다
출렁, 바다의 한쪽 끝이 기우뚱거린다.
항구 건너편 산동네에 둥지를 튼 베트남 여인
촉촉이 젖은 눈망울을 달고 다닌다.
사람들이 아는 것은 하룽베이 어디쯤
몽실몽실 떠다니던 섬들의 기억
그녀가 건너왔을 생의 푸른 바다가
안개를 달고 국경선도 없이 쳐들어오는 언덕에
먼저 뿌리를 내린 남국의 꽃들
쪼그라들던 동네의 골목이 조금씩
웃음꽃을 피우며 피어나는 것도
폐교를 고심하던 학교의 운동장이
다시 아이들을 매달고 달리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억양이 쎈 그녀의 말투가 마을의 추녀마다
함지박처럼 매달리고 다시 울리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녀의 꿈이 산 능선마다 하롱하롱
피어나고 있다
*배의 균형을 위하여 빈 배의 바닥에 채우는 물
-『기억의 유적지』, 시와산문사, 2017.
* 밸러스터 워터는 짐을 일정 부분 실어야 균형을 잡도록 설계된 배에 짐이 없을 때 짐 대신 채워주는 물이다. 근래에는 ‘평형수’라는 말의 쓰임이 더 힘을 얻고 있다.
배의 균형을 잡는다는 이유로 저쪽의 바닷물을 채워 이쪽 항구에 닿고 또, 이쪽에서 짐을 싣는 만큼 평형수를 밖으로 내보내는 일도 흔히 있었을 것인데 시인은 국제결혼을 통해서 한국 농어촌으로 온 여성에게서 이와 같은 평형수 역할이 있음을 생각한다.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쪼그라들던 동네”에 와서 기꺼이 자신을 붓는 이주 여성으로 인해 마을이 살아나는 그림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혼기 늦은 청년을 구제해주고 살림도 돕고, 아기를 안겨 주고 폐교도 막아주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겠다. 하롱베이 여성의 하롱하롱 피어나는 꿈을 응원하는 데서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도 느껴진다.
긴 항로를 두고, 늘 평형을 이루고 살면 좋겠지만 현실은 수시로 기우뚱거리며 사납게 흔들대기도 할 것이다. 주변을 차별 없이 건사하려는 마음을 평형수로 간직하는 것이 삶의 한 방편은 될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