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를 꿈꾸며 / 김수영
로빈슨 크루소를 꿈꾸며 / 김수영
로빈슨 크루소가 구석에 쭈그려 앉아
가끔 울기도 하던, 이제는 그 술집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럼주 통과 푸른 사과가 가득 차 있던
도시 한가운데 지하의 난파선 셸링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들 중의 하나가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모두들 자신들도 한번쯤
이곳을 버리고 은밀히 로빈슨을 꿈꾼다
정처없는 뜬구름과 푸른 산호의 섬
우리들이 보물섬에 대해 말하듯
그의 섬에 관하여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때에도
그런 섬은 없다고, 누구도 단정짓지는 않는다
설령 우리들 중의 하나가 로빈슨을 꿈꾼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를 비웃지는 않는다
갑자기 심각해진 사람들은 말을 잃을 뿐이다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 1996.
* 한번쯤 허밍하기도 했을, sailling(로드 스튜어트의 리메이크 곡) 가사에는 항해의 이유를 “to be near you, to be free”로 적고 있다. 당신 가까이 있기 위해서 또 자유롭기 위해서 먼 곳을 다니며 고생도 한다는 것인데, 정작 ‘당신’과 ‘자유’는 함께 묶이는 것보다 서로 다른 선택지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이 노래를 흥얼거린 사람도 항해의 귀착지보다는 항해와 모험 그 자체에 더 많이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술집 ‘셸링’이란 이름도 그런 낭만성을 환기시켜 손님들을 포획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난파선을 닮은 이곳에선 로빈슨을 꿈꾸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꿈과 그렇지 못한 현실의 간격으로 인해 심각해지거나 말을 잃거나 할 뿐이다.
시인은 로빈슨에 관한 여섯 편의 시를 시집에 실었다. 어느 날 강의를 빼먹고 잠적했던 ‘그’가 로빈슨의 시작이다. 돌아온 그는 “스스로의 그늘이 아픈 듯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로빈슨 크루소라 불렀다”(「로비슨 크루소의 초상」)고 하더니, 마지막엔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사이의 한 섬, 그 속에 갇힌 한 사람을 생각한다”(「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고 했다. 로빈슨은 그늘이 있는 사람이고, 바쁜 일상에 말려들기보다는 외롭게 뚝 떨어져 사색하는 사람인 셈이다. 말하자면, 로빈슨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곳의 체제, 질서, 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공간, 다른 공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로 인해 1719년, 다니엘 디포에 의해 탄생한 로빈슨은 지금도 계속 불려나온다.
이제, 표류할 무인도도 없고, 여가를 위해 의도적으로 찾아가는 섬은 그만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뿐이라는 냉랭한 시각도 공존한다. 하지만 ‘셸링’의 한때를 기억하는 사람, 여전히 sailing을 꿈꾸는 사람들, 그도 아니면 잃어버린 꿈에 술을 건네는 난파자들로 인해 삶은 리드미컬해지는 것이리라.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