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단장(斷章) Ⅱ / 김민부

톰소여와허크 2017. 9. 25. 17:26

단장(斷章) / 김민부

 

 

도미에의 목탄화(木炭畵)

에서였을까

그런 골목길

살아도

여망(餘望)이 없는

황혼(黃昏)

어디선가

개가 짖는다

여자는 창문을 열고

자꾸 기침을 하고

하수도 속엔

지난밤의

가을비가 울고 있었다

잎들을 떨구어 버린

가로수 아래

금방 죽은 새 한 마리의

눈동자가

황혼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 나부와 새,1968(김민부 시선,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 도미에(1808~79)삼등 열차’(1862-3)로 많이 소개된 작가다. 술 마시는 사람, 피난민, 노동자의 모습 등 주로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신문 만평에서는 지도자를 풍자하거나 언론 자유를 주장하는 내용을 실어 감옥에 다녀오기도 한다.

고흐의 편지글에도 도미에의 작품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그의 무모한 익살은 오직 가면 / 이를 악물고 참는 고통이요 / 그의 심장은 따뜻한 햇빛으로 빛난다 / 천진난만하고 활달한 웃음 속에서”(‘도미에의 초상에 바치는 시부분, 보들레르)라는 표현이 도미에의 생을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민부 시인이 본, 도미에의 목탄화가 어떤 작품인지 헤아릴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일단 뒤로 미루고 몇 자 적는다.

김민부 시인(1941~72)은 산복도로가 지나는 부산 수정동 출신이다. 최근 시인의 이름을 딴 김민부 전망대가 수정동이 아니라 초량동 이바구길에 마련된 것은 이곳에 좋아하는 애인이 있어 번질나게 출입했던 곳으로 알려져서다. 고등학교 때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시집 (항아리1956)까지 냈던 조숙한 천재는 방송국 프로듀서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지만, 의문의 방화로 죽는다.

그의 죽음을 자살로 보는 쪽은, 요절한 시인의 시에 유독, 죽음의 이미지가 많이 나타나는 걸 지적한다. 이 시도 그렇다. “여망이 없는/ 황혼”, “잎들을 떨구어 버린/ 가로수”, “죽은 새가 죽음의 향수를 자극한다. 개가 짖고 여자가 기침하는 것이 생명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골목의 어둠을 더 활성화시킬 뿐이다. 급기야 어둡고 부정적인 기류는 가을비 울음으로 수렴되더니 황혼을 빨아들이죽은 새 한 마리의/ 눈동자로 귀결되고 만다. 이처럼 이 시는 구체적인 내용 전개보다는 우울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상황 자체를 응시하게 한다.

시인은 시의 방향이라 할 만한 서시에서조차 나는 때때로 죽음과 조우한다어떤 날은 숨 쉴 때마다 괴로웠다/ 죽음은 내 영혼에 때를 묻히고 간다고 했으니 시인 내면에 도저하게 자리 잡은 죽음의 그림자를 미리 밝힌 셈이다. 그의 비극적 인식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어떻게 키워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또한 예술가의 개성적 표현에 기대어 작품에 투사되곤 했을 것이다.

밝은 곳보다 어둔 곳을 천착한 것은 도미에와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김민부 시인의 경우엔 생에 대한 의지가 결여된 느낌이 있다. 시인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풍자와 유머가 빠진 현실인식은 어둠의 농도가 훨씬 깊어져 자칫, 자신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