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 / 이한걸
저녁밥 / 이한걸
아내가 두 시간 잔업을 위해
꾸역꾸역 마른 빵 씹을 이 시간
혼자서 먹는 저녁밥 목이 메인다
내가 주간이면 아내는 야간이고
아내가 주간이면 나는 야간이다
한 주일씩 엇갈리는 교대근무
한 이불 덮으면서 주말부부다
지글지글 구운 고등어살을 발라
밥숟갈에 얹어주던 때는 언제였던가
숲속의 뻐꾸기 그만 좀 울어라
발작한 천식기침 멈출 줄 모르고
찬밥 물에 말아 혼자 먹는 저녁밥
담 넘어오는 저 된장찌개 냄새
- 『족보』,푸른사상사, 2012.
* 하루의 노동이 끝난 뒤 식구대로 둘러앉아 먹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이재무, 「위대한 식사」중)엔 된장과 물김치와 풋고추가 전부다. 그럼에도 시인이 ‘위대한 식사’라고 명명했던 것은 그 안에 자연이 있고, 가족이 있고, 차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식사와 “혼자서 먹는 저녁밥”은 밭일하고 공장일하는 차이 그 이상으로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교대 근무나 연장 근무로 부부가 함께 밥 먹는 시간이 사라진 이유가 커 보인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 야간 학습이나 학원 공부에 시간을 빼앗기고, 커서는 취직 공부에 시달리고, 그 다음에는 “아내도 공장 나가고 / 딸도 공장 나가고 / 아들도 공장 나가”(「족보」중)면서 또 다시 세대를 이어 교대 근무나 연장 근무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저녁밥 자리는 주말로 밀리거나, 특별한 일처럼 되어버리기도 한다.
연장 근무를 포함한 법정 노동시간이나 수당 문제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다투어 왔고 어렵게 성과도 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은 노동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나라로 손꼽힌다. 버스 운전이나 집배원 업무 등등엔 노동시간 특례조항을 두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저녁이 없는 삶의 표본이기도 한 교대 근무자의 경우엔 노동 강도나 육체 피로도에 비해 현저히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이해관계의 한 축인 노동자 스스로 처우 개선에 더 적극적이면 좋을 텐데 무엇보다 고용 불안이 발목을 잡고 있다.
사실, 근로 시간의 적정 여부는 인간이 왜 존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연결되는 철학적 문제기도 하다. 노동이 귀하지만 노동 자체가 목적인 삶을 소망하지 않는다. 노동의 대가로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는 가운데 휴식과 여유가 주어지고 그 여유로 이웃도 살피고 취미도 가꾸는 삶이면 좋을 것이다. 천식 기침을 얻을 정도로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주말을 기다리지 않아도 따뜻한 저녁밥이 있는 사회, 휴식 끝에 일이 기다려지기도 하는 '놀라운' 사회를 차별 없이 누릴 수 있기를 추석 달에 빌어 본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