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월의 딸들
김상은,『소월의 딸들』, 대성, 2012.
소월의 외증손녀가 할아버지인 소월에 대해 쓴 글이다. 다만, 1967년 박종화, 서정주, 구상이 국회의장에게 소월의 직계 자손 김정호 씨의 취직을 부탁하면서 작성한 추천서에 “김소월 선생의 친자녀들 가운데 남하한 유일인자”라는 표현이 있어서 어느 한 쪽에 오해가 있었을 성싶다.
저자는 <소월의 노래>(2011)라는 앨범도 냈는데, 성악을 전공했지만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시 내용 전달에 주력했다는 얘길 들려준다. 지금, 저자가 부르는 ‘개여울’의 노래를 좋게 들으며 몇 자 적고 있는 중이다.
저자는 성장해서 우연한 기회에 소월의 후손임을 밝히게 되고 그걸 계기로 관심을 더 받게 되던 차에 책꽂이에 꽂힌 계희영의 『소월선집』(1970)을 다시 읽게 된다. 계희영은 소월의 숙모로서 일에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서 소월을 챙기며 옛날이야기를 밤낮없이 들려주어 소월의 문학적 소양을 길러준 분이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계희영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소월이 배나무에 수시로 올라가 책을 읽었다는 점이다. 오산 중학 시절, 방학 때 집에 온 소월은 가까이 지냈던 상섭이가 장가 간 후 외로움을 더 타면서 배나무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거다. 나 또한 상수리나무에 올라가 죽치고 있었던 시절이 있거니와 오래전에 읽었던 제제의 라임오렌지나무에도 생각이 미친다. 소월의 시 중에 절창이라고까지 얘기하는 「초혼」은 계희영에 따르면, 상섭이 형제가 죽고 난 뒤에 그 상실감을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소월은 일본 유학 도중 동경 대지진을 겪고 가족의 만류로 유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때의 심정이 잘 드러났다는 「기회」라는 시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강 위에 다리는 놓였던 것을!/ 건너가지 않고서 저볏는 동안/ 배의 거친 물결은 볼 새도 없이/ 다리를 무너치고 흘렀습니다// 먼저 건넌 당신이 어서 오라고/ 그만큼 부르실 때 왜 못 갔던가!/ 당신과 나는 그만 이편저편서/ 때때로 울며 바랄 뿐입니다려.”
이 일 이후로 소월은 더 우울해지고 그저 소일하는 듯한 삶을 살았다고 숙모는 회상한다. 이 시는 건너야 할 다리 앞에 새로운 각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동류들에게도 아픔과 위로를 같이 하는 힘이 있기도 하다. 저자가 소월과 동일시하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시로, 노래로 삶에 위로가 되는 힘을 갖겠다는 거다. 저자가 소월의 「개여울」에 마음을 위로받았듯이 저자의 노래에 또한 마음을 적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