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겨울, 소리 없이 다가온 고양이 / 조선남

톰소여와허크 2017. 11. 10. 10:29






겨울, 소리 없이 다가온 고양이 / 조선남


왜 그럴까
겨울밤 달빛이 더 투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날씨가 추울수록 달빛이 더 맑은 것은 왜일까


가끔 지나던 자동차 소리도
지나는 행인의 발자국 소리도 멈췄다


새벽이 오려나, 
잠을 깼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천막 밑으로 들이치는 바람이, 뼛속까지 시리게 만든다


밀린 노임 다 받아야 오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빈손으로 집에 들어갈 용기가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지친 내 몸뚱이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가족들 앞에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환한 달빛에 앙상한 겨울나무가
실루엣으로 흔들린다
소리 없이 다가온 고양이가
천막 밖에서 그림자만 드리운다
먹이를 찾아 나선 것일까?
저 고양이도 거둬 먹여야 할 새끼가 있을까?


바람이 차다
길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에
자꾸 눈앞이 흐려진다


얼마나 더 비틸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자꾸 처지기만 하는 몸이 
하루하루가 다르다

- 『눈물도 때로는 희망』, 푸른사상사, 2016.


  * 화자는 “밀린 노임”을 받기 위해서 한뎃잠을 마다하지 않는다. 천막 농성을 하다가 그곳에서 날밤을 새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닌가 보다. 겨울 날씨에 몸이 굳고 더 어찌해볼 기력조차 없는 상황까지 떠밀리고 있으나 쉽게 자리를 뺄 수도 없다. 자신을 기다리는 가정이 있지만 빈손으로 차마 갈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어서다. 가족의 생계문제도 그렇거니와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이 사회의 비인간적이고 반노동적인 처사에 대한 최소한의 의사 표시를 포기하고 쉽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시집엔 시인이나 화자가 처한 좀 더 구체적인 정황도 있다. 
“지지리도 못난 하청 노동자였다/ 우리는/…/ 물량이 줄어들면 잘리고/ 혹독한 노동에 견디다 못해/ 산재라도 나면 곧바로 해고시키는/…/ 직장 폐쇄를 무슨 장난처럼 해대는/ 저들 자본 앞에서”(「파업을 선언한다, 기계를 멈추었다」중)라는 시구가 그렇다.
남들이 쉬는 주말에 불려와 일을 하다가 사고까지 당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피해자가 하청 근로자란 얘기를 종종 듣는다. 원청이 계약을 통해 하청을 부리고, 하청이 또 하청을 주는 구조에서 제일 밑의 하청 노동자는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산업 재해도 빈번하게 겪는다. 그럴 경우, 원청은 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책임이 없다는 자세를 곧잘 취한다. 하청 업자 역시, 재정 상태를 핑계로 보상에 인색한 데다 보험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하청 노동자의 생존이 달린 “직장 폐쇄”문제를 “장난처럼”결정하기도 하니, 그 배경엔 이윤만 주판질하는 자본가의 행위와 이를 제재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본가의 손을 들어주는 행정 행위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원청과 하청의 입장이 다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정도 일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한데서 떨고 있는 사람들! 당장의 임금을 받지 못한 것도 억울한 일이지만 불안한 고용으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절망이 더 깊고 더 아파 보인다. 창밖으로 겨울바람 소리가 들린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은 듯하다. (이동훈)